수리남 자바어는 수리남에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용되어 온 언어다. 흥미로운 점은 어휘뿐만 아니라 문법까지 인도네시아의 자바어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소피 빌레리우스(Sophie Villerius)의 박사 학위 연구에 따르면, 스라난통고(Sranantongo)와 네덜란드어가 모두 이 언어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19세기 말 수리남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플랜테이션에는 새로운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바로 그 시기, 약 3만 3천 명의 자바인 계약 노동자들이 수리남으로 이주했다. 현재 수리남의 자바인 공동체는 약 7만 명으로 성장했으며, 1975년 수리남 독립 이후 네덜란드로 떠난 자바인도 약 2만 5천 명에 이른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수리남 자바어'다.
그렇다면 수리남 자바어는 지금도 자바 섬에서 쓰이는 언어와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실제로 수리남에서 얼마나 사용되고 있을까? 라드바우트 대학교(Radboud University) 언어학자이자 FoS 블로거인 빌레리우스는 박사 논문을 통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았다. 논문 작성에 앞서 그녀는 수리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수십 명의 현지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자료를 수집했다.
수리남의 자바 마을, '데사'
빌레리우스는 수리남에서 자바인이 많이 거주하는 코메베인(Commewijne) 지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는 옛 플랜테이션이 여러 곳 남아 있는데, 1890년부터 1939년 사이에 대규모 자바인 집단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중 '러스트 엔 베르크(Rust en Werk)' 농장에서는 요즘 자바인들이 새우 잡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잡힌 새우는 인도식 새우 페이스트로 유명한 '트라시(trassi)'로 가공되기도 한다.
빌레리우스가 방문한 또 다른 곳은 수리남의 '데사(desa)' 중 하나인 렐리도르프(Lelydorp)다. 데사란 자바식 마을을 뜻한다. 수리남의 자바인들도 자바식 마을 구조 안에 정착했는데, 이는 민족 집단을 최대한 함께 거주하게 함으로써 고유 문화를 보존하려던 수리남 정부의 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골에 사는 수리남 자바인들은 아직도 상당히 집단적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동체 성격이 언어 보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반면 도시에 사는 자바인들은 여러 언어가 뒤섞인 형태를 훨씬 많이 쓴다고 빌레리우스는 말한다. 특히 도시 청년층에서는 자바어가 거의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렐리도르프나 코메베인에 사는 젊은이들은 여전히 자바어를 사용하며, "특히 조부모님과 대화할 때"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언어가 당분간은 살아남을 것으로 본다. 문화적 가치 때문만이라도 그렇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사용은 줄어들고 있지만, 일부 젊은이들은 특정 자바어 단어나 축약형을 쓰는 것을 오히려 멋있다고 느낍니다."
네덜란드어와 스라난통고가 남긴 흔적
젊은 세대가 수리남 자바어를 덜 사용하는 핵심 이유는 많은 가정에서 가정어로 네덜란드어를 쓰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어는 교육 언어였고, 자녀의 노동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학교에서는 가정에서도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도록 장려했다. 빌레리우스에 따르면 지금도 네덜란드어가 종종 가정어 역할을 맡는다. 그녀는 "가장 최근 세대의 부모들은 이미 자신의 부모에게서 네덜란드어를 배웠고, 스스로 그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때로는 약간의 자바어를 섞어 쓰기도 하지만, 여전히 네덜란드어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자녀에게 물려주려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자바어, 네덜란드어, 스라난통고 사이를 수시로 오가며 코드스위칭을 하기 때문에, 수리남 자바어 역시 이들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이 언어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어와 매우 다른 길을 걸으며 발전했다. 빌레리우스는 박사 논문에서 여러 문법 구조를 구체적으로 분석했고, 수리남과 인도네시아의 자바어가 실제로 다름을 확인했다. 특히 스라난통고가 문법에 구조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자바인들은 플랜테이션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인종 집단과 감독관들과 소통하기 위해 스라난통고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이중언어 사용자가 되었죠."라고 밝혔다.
반면 자바인들이 네덜란드어와 접촉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빌레리우스는 "처음에 네덜란드어는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집단의, 사실상 닿기 어려운 언어였습니다. 교육 기회가 자바인들에게 열리고 그들이 더 높은 사회적 위치에 오르면서 비로소 네덜란드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의 일이기 때문에, 수리남 자바어에는 비교적 최근의 네덜란드어 영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단어 차원에서도 나타나는 변화
연구자는 문법뿐 아니라 단어 차원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그웬티(gwenti)'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스라난통고로 '~에 익숙하다'라는 뜻인데, 본래 대응되는 자바어 표현은 수리남에서 더 이상 쓰이지 않습니다. 화자들에게 그웬티는 이미 자기들 자바어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수리남 자바어에는 인도네시아 자바어에서는 사라진 낡은 표현들도 남아 있다. 자바의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고 "할머니께서 쓰시던 말씀과 똑같네요"라고 반응할 정도다.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수리남 자바어
이러한 영향들로 인해 수리남 자바어는 표준 인도네시아어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인도네시아 자바어와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두 언어의 화자들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다만 인도네시아인들은 수리남인들의 자바어를 종종 무례하다고 느낀다.
"자바에서는 전통적으로 격식 수준에 따라 여러 층위의 자바어가 있었습니다. 궁정 귀족이나 어른들에게는 가장 높은 층위를, 아이들에게는 가장 낮은 층위를 사용하죠. 각 층위마다 고유한 어휘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리남에서는 계급 구분이 크지 않아 가장 높은 층위가 초기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자바인이 농업 노동자였으니까요. 연령에 따른 구분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요즘은 젊은이들이 어른들에게도 비격식 자바어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바어를 쓴다 해도 대개 그 수준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차이는 언어 사용 방식과 관련이 있다. 수리남의 젊은 자바인들은 언어를 덜 쓰다 보니 어르신들만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한다. "인도네시아는 정반대입니다. 그곳에서는 젊은이들이 더 빠르고 유창하게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리남의 자바어는 진정한 상속 언어, 즉 이주민 언어입니다. 화자들은 다수 인구가 쓰는 언어, 즉 스라난통고나 네덜란드어로 더 빨리 전환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