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20년 전 오늘, NATO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북마케도니아가 잇달아 독립한 뒤 남겨진 '유고슬라비아의 잔해'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동맹 역사상 처음으로 주권국가를 향한 공격
"코소보의 미래에 관한 협정 서명을 거부하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NATO는 폭격 작전을 개시합니다. 공습은 유고슬라비아군이 해당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약 3개월간 지속될 것입니다. 이는 동맹 역사상 처음으로 주권 국가를 상대로 감행하는 공격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공습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최초의 공중 공격이었으며, 그리스 북부 국경에서 불과 몇십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인근 국가에서 벌어진 참화였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열화우라늄 폭탄과 무너진 기반시설
당시 폭격에서 NATO군, 특히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그 시대 최신 무기 기술이던 열화우라늄(depleted uranium) 탄을 대량으로 사용했습니다. 공격 대상은 주로 유고슬라비아 국가 운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기반시설이었습니다.
그리스 사회를 뒤흔든 반전 여론, 그리고 AEK의 대담한 선택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임기 마지막에서 두 번째 해에 벌어진 이 사건은 그리스 전역에서 거센 여론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반발은 주로 유고슬라비아 국민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담은 집회와 자선 콘서트 등의 형태로 표출되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리스 명문 축구팀 AEK는 폭격이 한창이던 베오그라드를 과감히 방문해 파르티잔(Partizan)과 친선 경기를 치렀고, 이 경기는 순수한 반전 메시지를 담은 행사로 기록되었습니다.
폭격의 결실: UNMIK 설립과 막대한 희생
폭격은 결국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지속되었고, 그 결과 유고슬라비아군의 코소보 철수와 함께 유엔 평화유지 임무인 '코소보 유엔 잠정행정부(UNMIK)'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가 치른 대가는 허투루였습니다. 3,60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대다수는 민간인이었지만 군인과 경찰관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경제적 피해 역시 1999년 물가 기준으로 무려 300억 달러에 달하며, 유고슬라비아 국가 전체가 초토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