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 항구에는 배만 오가는 것이 아닙니다. 섬과 로봇, 심지어 누디스트 캠핑장까지 자리하고 있습니다. 『더 포트 오브 로테르담(The Port of Rotterdam)』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녁에 로테르담 항만 지역을 차로 지나가면 끝없이 이어지는 불빛과 기묘한 건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연기를 내뿜는 높은 탑들 사이로 넓고 원통형의 저장 탱크와 알록달록한 컨테이너 행렬이 번갈아 펼쳐지죠.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동시에 이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달 표면 같은 신비로운 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다행히 『더 포트 오브 로테르담』이 출간되면서 굳이 현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이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구가 얼마나 다채롭고 놀라운 곳인지 눈으로 보고 글로 읽으며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네덜란드의 이 독특한 지역이 지닌 여러 얼굴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특히 환상적인 사진들이 큰 몫을 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크레인, 화염을 뿜는 파이프, 거대한 선박들이 펼쳐진 세계를 담고 있는데, 거의 모든 사진 속에서 인간은 초라할 정도로 작아 보입니다.
누디스트 캠핑장
이 책은 항구의 중요한 36곳을 서쪽에서 동쪽 순서로 소개합니다. 외항선이 진입하는 마스게울(Maasgeul)부터 리데르커르크(Ridderkerk)의 레이어바르트(Reijerwaard)까지입니다. 저자들은 이곳을 '로테르담의 신선식품 코너'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오렌지로 가득 찬 컨테이너가 이곳에 도착하면 '푸드센터 레이어바르트(Foodcenter Reijerwaard)'를 통해 슈퍼마켓과 요식업체 등으로 배송됩니다. 한 페이지 남짓한 36개 장소 소개는 모두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이 짧은 글들이 항만 지역이 얼마나 다재다능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예가 베어섬(Bear Island)입니다. 마스플라크테(Maasvlakte) 인근에 위치한 무인도로, 과거 이곳에 있던 자연보호구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섬이 있기에는 엉뚱한 장소처럼 보입니다. 이곳을 오가는 선박이 워낙 많아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섬에도 나름의 기능이 있었으니, 바로 인근 GATE LNG 가스 터미널과 연관된 것입니다. “섬과 터미널 사이의 수역은 LNG 운반선 전용입니다. 다른 모든 선박은 바깟쪽으로 우회해야 합니다”라고 책은 설명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 뒤에 처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점, 바로 이것이 항구를, 그리고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항구 안의 누디스트 캠핑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을 오가는 3만 척의 선박만이 항구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항만 지역 일부는 레저 공간으로 조성되어 많은 이용객이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레
책은 역사적인 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19세기에는 항구와 도시가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항구는 화물 환적에 점점 더 집중하게 되고 서쪽으로 계속 확장하면서 도시와 항구는 서로 멀어지게 됩니다. 예전 로테르담에서 볼 수 있었던 '선박과 시설들의 발레'는 이제 도시 외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항구의 역사는 흥미로운 주제지만 『더 포트 오브 로테르담』에서는 그 그림이 충분히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환적 항구로 성장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함축적으로 짧게 전해져 많은 부분이 불분명합니다. 역사에 훨씬 더 많은 분량이 할애되었어야 했습니다. 간혹 의아스러운 관찰도 눈에 띕니다. 로테르담 중앙역에 설치된 선박 영상을 송출하는 대형 스크린 덕분에 항구가 로테르담 중심부로 돌아왔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훌륭한 출판물에 남은 사소한 흠일 뿐입니다. 아름다운 사진들만으로도 높은 구입 가격의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