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나치 점령에서의 해방 75주년, 아테네가 다시 기억하는 1944년 10월 12일

전쟁의 '끝'이 아닌 '시작'을 기념하는 나라, 그리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념하는 것과 달리, 그리스는 논리적으로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종전이 아니라 전쟁의 시작을 기념해 왔습니다. 그 날짜는 바로 1940년 10월 28일, 이탈리아가 그리스에 선전포고를 한 날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특히 '자유로운 아테네(Athina Eleftheri)' 행사를 계기로 공공의 기억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테네는 단순히 나치 점령으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는 데 그치지 않고, 3년 반에 걸친 점령기가 대다수 시민들에게 남긴 참혹한 흔적을 배우고, 알리고, 기억하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1264일간의 점령, 그리고 마지막 독일군의 철수

독일군은 1941년 4월 그리스 수도에 입성해 도시를 절망과 극심한 빈곤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정점은 1941~1942년의 치명적인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계산에 따르면 이 기간 아테네에서만 4만 명이 넘는 시민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1944년 10월 12일 아침, 펠미(Felmi)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은 무명용사 기념비에 헌화를 한 뒤, 1264일에 걸친 점령을 끝내며 질서정연하게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해방의 순간, 거리로 쏟아진 시민들

아테네는 비무장 도시로 선포되었고 독일군이 철수하자, 시민들의 자발적인 환희와 열광이 도심과 교외 곳곳에서 폭발했습니다. 분노한 군중들은 독일군이 무명용사 기념비에 헌화했던 화환을 파헤쳐 버렸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도 나치 깃발이 내려졌습니다. 한편 ELAS(그리스 인민해방군) 병력과 잔류 나치 잔당 간의 충돌 끝에, 케라치니 발전소가 완전히 파괴되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망명 정부의 귀환과 '해방 연설'

6일 후인 10월 18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이끄는 국민통합정부 요인들이 영국 스코비(R. Scobie) 중장 휘하 연합군 사령부 일행과 함께 아테네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먼저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그리스 국기를 게양했고, 이후 아테네 대성당(메트로폴리스)에서 관련 추도식을 거행했습니다.

나치 점령에서의 해방 75주년, 아테네가 다시 기억하는 1944년 10월 12일

직후 시나그마 광장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파판드레우 총리는 역사에 남는 '해방 연설'을 발표했으며 군중들은 환호성을 질러냈습니다.

짧았던 축제, 긴 내전의 그림자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게 축제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정부 내부의 첨예한 대립은 결국 균열로 번져 12월 사태(데켐브리아나)로 정점에 달했고, 그리스는 내전의 궤도에 진입하게 됩니다. 내전은 1946년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1949년에 끝났는데, 이는 독일 점령 종식으로부터 불과 5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출처: '자유로운 아테네(Athina Eleftheri)' 공식 웹사이트

관련 기념 행사는 10월 12일 토요일에 열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