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7월 5일, 미국 뉴욕주 버펄로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그리스 크레타 출신 조지 A. 스타타키스(George A. Stathakis)는 대담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는 당시 화제였던 도전, 즉 나무통 안에 몸을 담은 채 나이아가라 폭포의 '말굽폭포(Horseshoe Falls)'를 통째로 떨어지는 묵직한 승부에 동참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이 도전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형이상학적 체험을 다룬 책, 이른바 '생명의 비밀'이라 불릴 저서를 출간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46세의 마지막 도전, 150살 거북 '소니 보이'와 함께
46세였던 그는 인생 마지막이 될 이 모험에 150살 된 애완 거북 '소니 보이(Sonny Boy)'를 데리고 나섰습니다.
infoniagara.com 자료에 따르면 스타타키스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무게 약 1톤짜리 통을 제작했습니다. 통은 길이 약 3미터, 지름 1.5미터 규모로, 오크나무 판자 두 겹과 강철, 코르크 내장재로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양쪽 끝에는 나사로 고정된 '강철 완충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통 자체는 상당히 튼튼했지만, 그는 산소통을 단 하나만 챙기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1930년 7월 5일, 폭포로 떨어지다
1930년 7월 5일 토요일 오후 2시 30분, 통은 나이아가라의 거센 급류 위로 내던져졌습니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며 스타타키스가 폭포 아래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를 애타게 기다렸고, 뉴욕타임스 취재진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스타타키스가 고용한 베테랑 래프트맨 윌리엄 '레드' 힐(William "Red" Hill)은 통을 회수해 해안으로 끌어오는 임무를 맡고 기다렸지만, 해 질 녘까지도 통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 통은 폴스뷰 교(Falls View Bridge) 근처에서야 발견되었습니다. 힐이 통을 회수해 해안으로 끌어올리고 해치를 여는 데 무려 4시간이 걸렸습니다.
산소 부족으로 숨진 채 발견된 스타타키스
통 안에서 스타타키스는 산소 부족으로 질식사한 상태였습니다. 반면 그의 거북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당시 신문들이 전했듯 "...힘겹게 기어 나와 공기를 마셨다..."고 합니다.
해치의 나사 하나가 풀리면서 물이 새어 들었지만, 스타타키스는 이미 밀폐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다 산소가 바닥난 뒤였습니다. 그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것 자체는 살아남았지만, 문을 열고 탈출하지 못했고, 통은 폭포 뒤편에 갇혀 구조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산소통 하나면 3시간은 충분하다"
통을 만든 버펄로 증류소의 한 직원은 당시 기자들에게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산소통을 하나 더 챙기라고 권했지만, 그는 하나면 3시간은 충분하다고 했다. 열 개를 넣을 공간이 있었는데도 그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3시간이 충분히 긴 시간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통에 들어가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3시간 안에 나오지 못한다면, 어차피 계속 살아갈 이유도 없을 것이다."
10센트 주고 본 통, 그리고 예언된 죽음
통이 회수된 후, 발견 장소 인근에는 관람용 천막이 세워졌습니다. 통을 보려면 10센트를 내야 했고, 통을 건져 올린 사람들은 그 수익을 나눠 가지며 스타타키스의 이야기를 방문객들에게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 통은 나이아가라 '데어데블 전시관(Niagara Daredevil Exhibit)'의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벽면 곳곳에 남은 긁힌 자국들은 스타타키스가 죽음과 마지막까지 싸웠던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흥미롭게도 조지 스타타키스는 그 이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지역 신문에 "나이아가라에서 제물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적어두기까지 했습니다.
최초의 생존자, 애니 에드슨 테일러
참고로, 통에 몸을 담고 폭포에서 떨어져 살아남은 최초의 인물은 미국인 교사 애니 에드슨 테일러(Annie Edson Taylor)입니다. 그녀의 도전은 1901년 10월 24일, 그녀의 나이 63세 때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