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발명은 인류의 이동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개인 이동 수단에 대한 초기 실험에서 시작해 자율주행·커넥티드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자동차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발명해 왔습니다. 이 혁신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보편적인 경제적·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어쩌면 어떤 기술 물건도 자동차만큼 개인적·집단적으로 깊이 받아들여지고 길들여지며 열정과 신화의 대상이 된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제조사들은 더욱 컴팩트한 모델, 새로운 동력원(전기, 태양광, 수소 등)과 첨단 안전장비(충돌 방지 시스템, 스마트카 등)를 갖춘 차량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역사의 시작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사람이나 짐승의 힘으로 끌어당기는 썰매나 바퀴 달린 수레를 이용했습니다. 증기기관을 차량에 얹으려는 시도는 17세기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인 성과는 18세기 말에야 나타났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즉 '스스로 움직이는 탈것'은 1770년 프랑스의 조제프 퀴뇨(Joseph Cugnot)가 만들어냈습니다.
군사 기술자였던 퀴뇨는 대포를 운반하는 포차를 기계화할 목적으로, 말 대신 증기기관으로 구동되는 세 번째 바퀴를 장착했습니다. 이 실험은 결정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고압 증기가 동력원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도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미국, 영국 후발 주자들의 노력 역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증기기관은 너무 무겁고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엔지니어들은 대신 철도 개량에 매진했고, 자동차는 더 작고 가볍고 효율적인 엔진, 즉 내연기관이 발명될 때까지 한동안 잊혀지고 맙니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는 무엇인가?
카를 벤츠(Carl Benz)는 독일의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와 함께 1885년 최초의 자동차, 즉 내연기관을 장착한 삼륜차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과 프랑스 중 누가 진정한 최초의 자동차를 발명했는가라는 질문은 지금도 논쟁거리이며, 그 답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쪽 견해에 따르면, 자동차는 1884년 2월 12일 에두아르 들라마르드부트빌(Édouard Delamare-Deboutteville)과 레옹 말랑댕(Léon Malandin)이 '가스기관과 그 응용'에 대해 특허를 출원한 순간 탄생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프랑스 중심'의 계보는 2년 뒤 라인강 건너 독일에서 카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개발한 내연기관을 간과합니다. 이 내연기관은 이후 프랑스 제조사 파나르&르바소르(Panhard & Levassor)가 첫 모델에 도입하면서, 최초로 양산되고 카탈로그로 판매된 자동차의 동력원이 되었습니다.
엔진의 선택
자동차의 역사는 아주 일찍부터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1899년 파리에서 열린 제2회 국제자동차 박람회에는 이미 '자동차의 조상들'을 소개하는 회고 코너가 마련되었습니다. 더욱 인상적이고 완성도 높았던 것은 1907년 제10회 박람회의 회고관으로, 1770년 퀴뇨의 증기포차, 1878년 아메데 볼레(Amédée Bollée)의 '망셀(Mancelle)', 1885년 드 디옹-부통(De Dion-Bouton)의 트라이시클, 1887년 다임러의 드라이진, 1896년 드 디옹-부통의 증기 옴니버스가 대표 출품작으로 전시되었습니다. 다만 1860년대 초 파리 거리를 달렸다고 전해지며 쥘 베른에게도 영감을 준 에티엔 르누아르(Étienne Lenoir)의 가스 자동차는 빠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브라지에(Brasier)와 르노(Renault)의 차량, 그리고 전기차들도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자동차라는 물건의 첫 번째 성과는 차량의 전체 설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변속, 조향, 차체 등 기본 구조는 이후 수십 년간 근본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동력 문제만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전기자동차의 상대적 한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추진 방식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기차가 처음으로 시속 100km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1899년 4월 29일, 벨기에의 카미유 제나치(Camille Jenatzy)가 몰던 '라 자메 콩탕트(La Jamais Contente)'가 세 자릿수 속도라는 심리적 문턱을 처음으로 넘어선 것입니다.
자동차가 산업이 되다
1900년, 미국·프랑스·독일은 이미 9,504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8년 뒤 헨리 포드(Henry Ford)가 모델 T를 발명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그는 조립라인에서 수백만 대의 모델 T를 생산해냈고, 덕분에 '모든 사람을 위한 개인 고속 교통'이 탄생했습니다. 포드는 20세기 초 자동차 산업 전체, 나아가 산업 전반에 자신의 생산 방식을 표준으로 정착시켰습니다.
유럽에서는 전후 경제 회복기에 이르러서야 자동차가 대중화되었습니다. 폭스바겐의 '비틀(Beetle)', 르노의 4CV, 시트로엥의 2CV는 수백만 대가 팔리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바퀴 달린 차량 수와 속도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도로교통법규와 운전면허 제도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자동차는 교통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특히 개인과 공간의 관계에 깊은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경제적·문화적 교류를 촉진했고, 도로와 고속도로, 주차장 같은 새로운 인프라의 대규모 확충을 이끌었습니다. 페르디난트 포르셰(Ferdinand Porsche)에서 앙드레 시트로엥(André Citroën), 루이 르노(Louis Renault)까지, 자동차 산업의 위대한 개척자들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우리 일상 곳곳에 울려 퍼집니다.
현대 자동차의 과제
1970년대 자동차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두 차례의 석유 파동(1973년, 1979년)은 휘발유 가격을 급등시켰고, 유고에 대한 불안을 낳았습니다. 제조사들은 더 작은 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같은 연료로 더 멀리 달릴 수 있는 고효율 엔진을 개발했으며, 차체를 유선형으로 다듬어 공기저항을 줄였습니다.
동시에 도로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커졌습니다. 운전자는 늘어나고 차량 성능이 좋아질수록 속도는 빨라졌고, 교통사고의 건수와 심각성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제조사들이 차량 안전장비를 강화하는 가운데, 공공 당국도 도로망 개선, 고속도로 건설, 교통안전 정책, 속도 제한,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중고차 정기검사 등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로 위 자동차의 급증은 또 하나의 결정적 문제, 즉 자동차 오염을 낳았습니다. 촉매변환장치는 일부 오염물질을 제거할 수 있지만, 온실효과를 심화시켜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는 이산화탄소(CO₂)는 없애지 못합니다. 이제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 환경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테슬라(Tesla)처럼 전기차 개발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더 읽을거리
- 자일스 채프먼(Giles Chapman), 『자동차의 놀라운 역사(The Incredible History of the Automobile)』, Glénat Youth, 2018.
- 장루이 루베(Jean-Louis Loubet), 『또 다른 자동차의 역사(Une autre histoire de l'automobile)』, PURE, 2017.
- 『전설의 자동차 1200(Voitures légendaires : 1200 modèles)』, Larousse,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