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일은 알지만 건국 연도는 모르는 도시
로마는 역사상 매우 드문 사례에 속하는 도시입니다. 건국일이 4월 21일로 전해지면서도, 정작 몇 년에 건국되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4월 21일을 '로마의 생일(Natale di Roma)'로 기념할 만큼 이 날짜는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로마의 기원에 관해서는 건국 연도뿐 아니라, 로마가 속한 '민족적'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설이 난립해 왔습니다.
엇갈리는 건국 연대: 기원전 753년설과 7세기 후반설
전통에 따르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건국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연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왕정 시대가 약 250년간 지속된 셈이 되는데, 단 일곱 명의 왕(로물루스, 누마 폼필리우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안쿠스 마르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만 재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평균 수명과 통치 기간으로는 너무 긴 시간입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훨씬 더 개연성이 높은 다른 연대를 제시합니다. 즉 로마의 건국은 기원전 7세기 후반, 대략 기원전 635년에서 600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들도 이 시기 팔라티노 언덕 일대에 본격적인 정착과 도시화가 시작되었음을 뒷받침하고 있어, 이 학설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로물루스의 민족적 기원을 둘러싼 사색(四色)의 논쟁
민족적 기원에 관한 이론은 더욱 천차만별합니다. 가장 널리 인정받는 학설은 로마의 전설적인 건국자 로물루스(Romulus)가 라틴족(Latini)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어떤 학자들은 로물루스의 뿌리를 사비니족(Sabini)에서 찾고, 또 다른 학설은 그를 에트루리아인(Etrusci)으로 보며, 나아가 로물루스가 그리스인 출신이라는 파격적인 가설까지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이론이 각각 서로 다른 판본의 로마 건국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이야기, 사비니 여인 납치 사건, 에트루리아 왕조의 통치 등 각 전승은 서로 다른 민족적 색채를 반영하며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렇다면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배후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을까요? 그리고 초기 로마인들은 라틴계 혈통의 인접 민족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을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신화와 전설 너머의 고고학적·언어학적 증거들을 교차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의 기원을 밝히는 작업은 곧 고대 이탈리아 중부에서 여러 민족이 얽히고설키며 하나의 위대한 문명이 탄생한 과정을 재구성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