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클레오파트라의 네 자녀, 그 비극적 운명의 최후

클레오파트라의 네 자녀, 그 비극적 운명의 최후

클레오파트라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남매,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와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를 묘사한 조각상

클레오파트라의 네 자녀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생애에 걸쳐 네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이에서 얻은 장남 카이사리온, 그리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클레오파트라 셀레네, 그리고 막내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가운데 비교적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낸 것은 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단 한 사람뿐이었으며, 세 아들은 모두 비극이라는 공통된 운명으로 묶이고 말았습니다.

옥타비아누스, 프톨레마이오스의 혈통을 지우다

그 불행의 근원은 다름 아닌 옥타비아누스, 즉 훗날 초대 로마 황제가 되는 아우구스투스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지닌 천재였지만, 동시에 배신과 위선, 잔인함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라면 무엇이든 제거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으니까요.

안심하기 위해 그는 먼저 카이사르의 친아들이자 '이집트의 왕'이라 칭했던 카이사리온을 처형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열일곡 살에 불과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어서 안토니우스의 아들들인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도 옥타비아누스의 개선식에 끌려간 뒤 로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두 아이 역시 옥타비아누스의 명령으로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정확한 최후는 오늘날까지도 미궁 속에 남아 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쌍둥이 오빠 알렉산드로스보다는 훨씬 나은 운명을 맞은 이가 바로 클레오파트라 셀레네였습니다. 그녀는 안토니우스의 전처 옥타비아가 거두어 정성껏 키워냈고,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옥타비아누스는 그녀를 누미디아의 왕 유바 2세에게 시집보냈습니다. 이 결혼을 통해 셀레네는 누미디아와 마우레타니아의 여왕이 되었고,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는 현명한 군주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부부 사이에는 아마도 세 명의 자녀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운명이 확실하게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은 아들 프톨레마이오스뿐입니다. 그는 마우레타니아를 다스리다가 서기 40년,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게 살해당했고, 이로써 길고 찬란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역사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피를 이어받고 실제로 나라를 통치한 마지막 군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