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누스 앞의 클레오파트라』, 구에르치노(Guercino), 1640년
두 남자를 홀린 여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같은 로마 최고의 권력자들을 매혹해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정치적 지원을 얻어냈다면, 클레오파트라가 지극히 매력적인 여인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 앞에서만큼은 그녀의 익숙한 무기가 통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유혹을 시도했는가?
흥미로운 점은, 클레오파트라가 실제로 옥타비아누스에게 육체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만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역사학자들이 많습니다.
간략히 사건의 흐름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전 30년, 알렉산드리아의 함락
기원전 30년,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 이후 이미 기울어진 운명의 안토니우스 잔여 병력을 격파하고, 안토니우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습니다. 이제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의 포로가 된 신세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패
모든 것이 끝난 것을 직감한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은, 아마도 자신이 남긴 마지막 패를 꺼내 들었을 것입니다. 한 번 더 검증된 여성적 매력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그녀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권력 앞에서 무너진 매혹
옥타비아누스에게 있어 권력은 언제나 우선이었습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로마 개선식에서 끌어내 보이기 위해 살려두려 했을 뿐, 그녀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는 없었습니다. 젊은 승자는 냉철하게 정치적 계산을 앞세웠고, 클레오파트라의 마지막 도박은 헛수고로 돌아갔습니다.
비극적 최후
결국 긍지 높은 클레오파트라에게 남겨진 길은 오직 자살뿐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독사에 물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이로써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불꽃은 꺼지고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