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로슈에서 발견된 유해, 루도비코 일 모로일까?
프랑스 중부 로슈(Loches)에 위치한 생투르(Saint-Ours) 참사회 성당에서 발견된 유해가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일 모로(Ludovico il Moro)의 것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밀라노의 군주였던 그는 1508년,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의 포로 신분으로 이 마을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후원자 중 한 명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최후의 만찬』을 의뢰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 위대한 인물의 최후가 이토록 험난했던 배경은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복원 공사 중 드러난 네 개의 고대 무덤
성당 복원 작업 도중 네 개의 고대 매장지가 발견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공작이 바로 이곳에 안장되었다고 기술한 사료의 내용과 부합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확실하게 규명할 수 있는 열쇠는 단 하나, DNA 검사입니다. 검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온다면 유해는 이탈리아로 반환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무어인(Il Moro)'이라 불린 그의 유언을 비로소 실현하는 조치가 될 것입니다.
파비아 수도원에 마련했던 가족 묘소
루도비코는 아내 베아트리체 데스테(Beatrice d'Este)가 불과 21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출생지인 파비아 차르토텔레(Certosa di Pavia) 수도원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가족 묘소를 조성했습니다.
현재 베아트리체는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잠들어 있지만, 남편의 뜻은 그녀를 그곳으로 옮기고 훗날 자신도 곁에 함께 안장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의 유해는 프랑스 땅에 홀로 남게 된 것입니다.
루도비코 일 모로는 왜 프랑스에서 죽었나?
답은 간단합니다. 잘못된 동맹 선택 탓입니다.
1499년, 야심에 찬 정치가였던 그는 밀라노 공국을 프랑스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는 스위스 용병들의 지원을 받아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스위스는 결국 그를 버렸고 루도비코는 루이 12세의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1508년 5월 27일, 고향에서 먼 프랑스 로슈의 감옥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한편 루도비코와 깊은 인연이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화 『흰족제비를 든 여인』에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비밀이 숨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500년의 세월을 건너 이제야 빛을 보게 될 공작의 유언, DNA 검사 결과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