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선 여인.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페이스파우더의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시대가 만드는 패션
패션은 언제나 그 시대의 정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행은 단순한 미적 취향을 넘어, 당대의 사회·정치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1789년)은 바지와 짧은 머리 스타일이 널리 퍼진 시기이자, 오늘날 우리 눈에는 다소 기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여러 '금지 조치'가 시행된 시기로 기억됩니다.
가루 사용 금지령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페이스파우더(분) 사용 금지였습니다. 혁명 이전까지 가루는 얼굴을 하얗고 매끈하게 보이게 하는 화장품일 뿐만 아니라, 가발과 머리카락을 희게 칠하는 데에도 거의 강박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귀족 사회의 필수 아이템이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정에서는 하얗게 분칠한 머리가 지위와 격식을 상징하는 대유행이었죠.
그런데 혁명 정부는 이 가루의 사용을 금지해 버립니다. 그 이유는 물론 정치적인 것이었습니다.
"국민에게서 빼앗은 밀가루"
당시 가루는 밀가루, 즉 곡물 전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굶주림에 허덕이던 서민들의 입장에서, 귀족들이 자신들의 얼굴과 가발을 꾸미려고 소중한 곡물을 태워 없앤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가루는 '반사회적 제품', 곧 "국민에게서 빼앗아 간 밀가루"로 규정되었고, 그 사용은 금지되고 말았습니다.
패션이 된 정치 선언
프랑스 혁명기의 패션 변화는 단순한 미의 기준 변화가 아니라, 구체제(앙시앵 레짐)와의 단절을 상징하는 정치적 선언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실제로 혁명기에 가루를 뿌리고 다니면 구체제에 동조하는 귀족으로 의심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우아함의 상징이던 가루는 순식간에 위험한 '정치적 표식'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