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에 있는 아돌프 히틀러
기적처럼 살아남은 독재자
권력을 쥐고 있던 시절 아돌프 히틀러는 치밀하게 준비된 암살 시도를 수없이 겪었지만, 매번 기적적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이 글은 이탈리아 뉴스 사이트 '노티치에닛(Notizie.it)'에 게재된 원고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총통 히틀러의 클로즈업
'불멸자'로 보였던 남자
생애와 정치 경력 전반에 걸쳐 히틀러가 피해 온 암살 시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자신조차 자신은 공격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믿었고, 적들의 눈에는 적어도 한동안 거의 '불멸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1933년 불법화된 정당의 소속 인사들부터 귀족, 군부 내부의 일부 세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총통 제거를 꾀했지만, 끝내 성공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938년, 모리스 바보의 저격 미수
1938년 스위스 출신 모리스 바보(Maurice Bavaud)는 대규모 집회에서 히틀러를 저격하려 했다. 그러나 행진하는 거대한 인파가 조준선을 가려 버렸고,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로 끝났다.
1939년, 게오르크 엘저의 맥주홀 폭탄
이듬해인 1939년, 게오르크 엘저(Georg Elser)는 히틀러가 연설할 예정이던 뮌헨의 맥주홀을 폭파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예정보다 약 30분 일찍 자리를 떠나면서 폭탄은 빈 강단만을 파괴했고, 계획은 또다시 무산되었다.
TNT와 열차 폭파 시도
같은 해 1939년 9월에는 폴란드 저항 세력이 TNT를 이용한 폭파를 시도했으나 기폭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어 1942년 6월 8일에는 영국 비밀 정보국의 지원을 받아 다시 도전했지만, 이번에는 총통의 전용 열차가 아니라 앞서 가던 호위 열차가 피격되는 데 그쳤다.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의 폭탄
가장 유명한 시도는 단연 1944년 7월 20일의 사건이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동프로이센의 총통 대본영 '늑대의 소굴' 회의장에 시한폭탄을 설치했으나, 두꺼운 나무 테이블이 폭풍을 흡수하면서 히틀러는 경미한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역사학자들은 히틀러를 노린 암살 시도가 최소 40여 건에 달한다고 추산하는데, 그는 끝내 암살자의 손이 아니라 1945년 4월 베를린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