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알레산드로 만초니는 아마도 '만초니'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알레산드로 만초니는 아마도  만초니 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알레산드로와 어머니 줄리아 베카리아

공식 기록 속 출생

알레산드로 만초니(Alessandro Manzoni)는 1785년 3월 7일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저명한 사상가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의 딸 줄리아 베카리아(Giulia Beccaria)였고, 아버지는 밀라노에서 가장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중 하나에 속한 피에트로 만초니(Pietro Manzoni)였다. 그러나 이 공식적인 혈통 기록을 진지하게 의문시하는 자료들이 적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사랑 없이 시작된 결혼

줄리아는 가난해진 가문의 경제적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스무 살이던 1782년 10월 20일, 홀아비인 피에트로와의 결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베리 형제 중 막내인 조반니 베리(Giovanni Verri)에게 있었다. 성격 차이에서 비롯된 극복하기 어려운 갈등, 그리고 적어도 여성 쪽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난 감정의 결여까지 겹치면서 이 결혼은 예상대로 실패로 돌아갔고, 마침내 1792년 초 별거에 이르게 된다.

숨겨진 친생부, 조반니 베리

겉으로만 유지된 이 결혼은 줄리아가 조반니 베리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조반니는 거의 틀림없이 알레산드로의 친생부(생물학적 아버지)였다. 피에트로 본인도 이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어머니의 무관심까지 더해져 아이는 피에트로의 손에서 자라났다.

알레산드로 만초니는 아마도  만초니 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알레산드로의 '공식적인' 아버지, 피에트로 만초니

정략결혼이 일상이던 시대

정략결혼이 보편적이던 그 시대에는, 진정한 사랑을 결혼 생활 밖에서 찾고 누리는 것이 부부 양쪽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관습이었다. 다만 문제는 자녀들이었다. 혼외자로 태어난 아이들은 무거운 법적 제약과 끊임없는 편견에 시달려야 했고, 이는 사회생활 전반에 적지 않은 그늘을 드리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고한 후손이 이런 대우를 받지 않도록 애썼고, 종종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 관계를 연기하기도 했다. 피에트로 만초니 역시 이러한 방식을 아낌없이 활용한 인물이었다. 우리가 아는 한, 그는 어린 알레산드로에게 사랑과 정성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였으며, 심지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단독 상속인으로 지명하기까지 했다.

고귀함이 남긴 불멸

영혼의 고귀함은 불멸이라는 선물로 보답받았다. 문학적 재능이 친생부인 베리 가문,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사상가들의 혈통에서 물려받은 것이라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그만큼 확실한 것은 이탈리아 최고의 작가로 추앙받는 이 인물이 '알레산드로 만초니'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기억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