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는 응접실과 사적인 방에서 박물관 전시장까지 놀라운 여정을 거쳐 왔습니다. 문자 그대로 말입니다. 오늘날 담백한 전시 공간 속 누드 작품들은 더 이상 큰 설렘을 일으키지 않지만, 과거에는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에 더없이 좋은 구실이었고, 그 본질은 무엇보다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1908년, 오스트리아의 한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약 2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 돌로 조각된 이 여성 신체상은 다산 숭배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이 작품은 에로틱하다기보다는 종교적인 성격이 훨씬 강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는 이 조각상을 회화와 조각 속 누드(액트)의 상징적인 시원으로 간주합니다.
이 유명한 조각상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첫째, 옛 누드 작품은 언제나 특정한 맥락 속에서, 대개는 종교적 혹은 신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 둘째, 시대마다 통용되던 미의 기준은 수백 년에 걸쳐 확연히 변화해 왔다는 점입니다.
나체, 신화 속 신들과 영웅들을 위한 완벽한 '옷'
고대에는 남성 누드가 지배적이었으며, 여성 누드는 시대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작품 가운데 조각이 특히 눈길을 끄는데, 이는 당연합니다. 유의미한 규모의 회화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전해지는 것은 벽화나 항아리 등에 그려진 장식 이미지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조각상들이 대부분 알몸으로 표현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나체는 인간 육체의 완성미를 드러내는 동시에, 조각가가 자신의 예술적 기량과 해부학적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알몸의 조각상에는 살아있는 실존 인물을 담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작품 속 인물은 오직 신과 영웅, 그리고 후대에는 여신—특히 비너스—만이었고, 덕분에 작품들은 필수적인 신화적·종교적 맥락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안나 에키엘스카(Anna Ekielska)는 저서 『회화 속 누드』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누드 작품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의외로 단순하고 직관적이었습니다. 작품이 엄격하고 분명하게 그어진 경계를 넘지 않는 한, 그리고 신화나 성경 속 이야기라는 충분히 진지한 맥락 안에 들어오는 한,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조차 용인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고야와 마네를 시작으로 예술가들이 누드를 현대적이고 평범한 일상의 맥락 속에 담아내기 시작하자, 그 작품들은 외설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작품 제목을 적절히 붙이거나 신화 속 인물의 상징물을 함께 묘사하는 식으로 신화나 종교를 분명히 언급하기만 하면, 조각이든 회화든 품위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마음껏 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고대의 알몸 신들과 영웅들을 담은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놀랄 만큼 소박한… 자연의 섭리가 보입니다. 모든 것을 측량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리스인들(완벽한 조각상의 정확한 비례까지 포함해서요) 입장에서, 이런 작은 모습은 결코 실수일 리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대에는 작은 남근이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유행을 따른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귀족과 엘리트 계층의 특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동시에 문화적·지적 우월성의 상징이기도 했죠. 반면 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야만인, 이방인, 미개 부족에게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미의 기준은 세월이 흐르며 바뀌기 마련입니다.
중세의 검소함에서 루벤스풍 곡선까지, 그러니까 몸매의 역사
중세에 이르면 이전 시대와 달리 인간 육체의 죄스러움과 불결함이 강조됩니다. 예술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져야 했죠. 이런 분위기와 지침 속에서 나체를 그리는 일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트렌토 공의회(Council of Trent)의 권고, 즉 "인물이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그려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만 지킨다면, 예술가는 충분히 작품 속 인물들을 알몸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올바른, 다시 말해 종교적인 맥락 안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중세에는 누드가 예술의 주제로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가슴을 드러낸 성모상이나 알몸의 성인들을 그린 작품들이 남아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를 묘사하는 것도 유행했는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위는 무화과 잎으로 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세에는 이브가 고대의 비너스를 대신하는 위치에 섰던 셈입니다. 결국 성경 속 인물이 그림에 등장하기만 해도, 그 작품은 충분히 품위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꽤 검소했던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에 이르러 누드 예술이 다시 화단의 중심으로 돌아왔고, 곧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방향의 미술 교육은 필수적이었고, 인간의 몸을 연구하고 그리는 일이 최고의 훈련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시대에는 여성 누드가 주로 그려졌지만, 처음에는 학교 스튜디오에서 남자들만 모델로 섰습니다. 예술가들은 고대 여신상을 연구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파트너에게 포즈를 부탁하는 정도만 할 수 있었습니다. 르네상스는 고대의 이상적인 신체 치수를 찾으려는 노력도 이어갔고, 이를 위해 수학적 계산까지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크 시대에 새로운 미의 기준, 이른바 '루벤스풍 몸매(Rubensian shapes)'가 등장했습니다. 루벤스는 누드의 거장으로 명성을 얻었고, 스스로를 "인간 육체의 화가"라고 불렀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여성 누드가 점점 더 많이 그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신화적·종교적·역사적 맥락 역시 결코 소홀히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예술가들은 작품에 걸맞은 감각적인 분위기를 세심하게 연출했습니다.
규칙은 규칙일 뿐, 하지만 이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성의 알몸을 그린 그림은 무엇보다 부유하고 지위 높은 남성들의 즐거움을 위해 그려졌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런 작품들은 대개 침실이나 개인 서재의 벽을 장식했습니다. 때로는 커튼으로 가려 원치 않는 눈, 예컨대 하인들의 시선을 피하거나, 고귀한 아내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도발, 논란, 분노
19세기에도 누드 창작은 여전히 적절한 규칙과 틀을 지키며 진행되어, 논란을 일으키거나 대중을 격분시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전통 회화를 고수하던 아카데미즘에 맞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미술 사조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적 주제는 점차 물러나고, 모델들은 더 이상 신화 속 신과 여신의 역할을 맡지 않았으며, 웅장한 역사 장면은 사회적 금기를 건드려 관람객을 경악시키는 소재들로 대체되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점심』은 문자 그대로 스캔들을 일으켰고, 귀스타브 쿠르베가 1866년에 그린 『세계의 기원(L'Origine du monde)』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대중 앞에 공개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변했고, 예술과 누드의 얼굴 역시 그렇게 변해갔습니다.
오늘날의 누드 작품에는 전통적인 메시지나 우화적 의미가 더 이상 담겨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에로틱하고, 무엇이 도덕적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이제 작가만이 아니라 관람자의 몫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