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수전 B. 앤서니는 왜 수정헌법 제15조에 반대했을까?

수전 B. 앤서니(Susan B. Anthony)는 19세기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는 "그녀는 왜 수정헌법 제15조에 반대했는가?"입니다. 그 답은 그녀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표권 자체를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그 권리에서 완전히 배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정헌법 제15조란 무엇인가?

1870년 비준된 수정헌법 제15조는 "연방 정부나 각 주가 인종, 피부색, 또는 과거의 예속 상태를 이유로 시민의 투표권을 거부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남북전쟁 이후 재건 시대에 통과된 이 개정안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들에게 처음으로 투표권을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 조항에는 '성별(sex)'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즉, 어떤 인종의 남성이든 투표권을 얻을 수 있었지만, 여성은 여전히 선거에서 소외된 채로 남았습니다.

앤서니가 반대한 핵심 이유

앤서니와 그녀의 오랜 동료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은 노예제 폐지 운동과 여성 운동이 수십 년간 연대해 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수정헌법 제15조가 흑인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고 여성을 다시 한번 뒷전으로 밀어냈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앤서니는 이 개정안이 '성별에 따른 귀족주의'를 낳는다고 비판하며, 인종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동시에 성별에 따른 차별도 함께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녀에게 제15조는 방향은 옳았지만 절반에 그친, 불완전한 개정이었습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의 분열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성 운동 진영은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루시 스톤(Lucy Stone)이 이끄는 미국 여성 참정권 협회(AWSA)는 제15조 비준을 지지하면서도 별도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어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앤서니와 스탠턴이 세운 전미 여성 참정권 협회(NWSA)는 여성이 배제된 수정헌법에 반대하며 더 근본적인 헌법 개정을 요구했습니다.

두 단체는 1890년 전미 미국 여성 참정권 협회(NAWSA)로 통합되지만, 제15조를 둘러싼 논쟁은 당시 운동 내부의 깊은 긴장을 잘 보여줍니다.

1872년 체포 사건

앤서니의 반대 입장은 발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1872년 그녀는 뉴욕 로체스터의 대통령 선거 투표소에 나아가 실제로 투표했고, 여성 투표가 불법인 당시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수정헌법 제14조에 명시된 시민권에 근거해 자신의 투표권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여성 참정권 문제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산: 제19조 수정헌법으로 이어지다

앤서니는 190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녀가 이루지 못한 목표는 마침내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의 비준으로 실현되었으며, 이 조항은 성별을 이유로 한 투표권 거부를 금지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19조는 종종 "수전 B. 앤서니 수정헌법"이라고 불립니다.

결론

수전 B. 앤서니가 수정헌법 제15조에 반대한 것은 인종적 편견 때문이 아니라, 오랜 동맹 관계였던 흑인 남성에게는 투표권을 주면서 여성은 계속 배제하는 이중 기준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그녀의 반대는 결국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제19조 수정헌법으로 이어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