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래트클리프(John Ratcliffe, 약 1549년 ~ 1609년 10월 29일)는 잉글랜드 출신의 탐험가이자 궁정인, 시인, 정치가, 식민지 개척자였습니다. 그는 북아메리카 최초의 잉글랜드 영구 정착지인 제임스타운(Jamestown)에서 초대 평의회 의장으로 활동한 인물로 미국 역사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임스타운 초대 평의회 의장
래트클리프는 여러 공직을 맡으며 신생 식민지의 운영을 이끌었지만, 1609년 제임스 강 리치먼드 인근에서 자신의 지휘 아래 있던 세 명의 식민지 주민들과 함께 포우하탄 연합(Powhatan Confederacy)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포우하탄 연합은 당시 갓 자리 잡기 시작한 제임스타운 정착지와 대립하던 원주민 세력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의 후계자가 누구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부 기록에는 조지 퍼시(George Percy)가 뒤를 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제임스타운 초기 몇 년간의 기록이 완전하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반된 평가: 폭군인가, 구원자인가
제임스타운 초기 시기에 관한 문서와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남아 있는 대부분의 기록조차 그가 사망한 지 수년 뒤에야 작성되었습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래트클리프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립니다.
일부 자료들은 그를 탐욕스럽고 자기 과시적이며 독재적인 성향의 인물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성격 탓에 제임스타운 인근 원주민 부족들과의 관계가 이미 긴장된 상태에서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다른 기록들은 그를 식민지의 '구원자'로 평가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래트클리프의 죽음이 오히려 식민지의 단기적 발전과 장기적 생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군사 경험 없는 지도자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래트클리프가 조지 퍼시나 크리스토퍼 뉴포트(Christopher Newport)와 달리 정식 군사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가장 중요한 군사 지도자 역할을 담당한 것은 래트클리프였고, 해군 및 전투 경험을 갖춘 나머지 세 사람은 훗날 그의 가장 큰 비판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