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공포의 대상'이었던 시절
19세기 유럽에서는 자위행위, 동성애, 매춘이 하나같이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사회 전반은 이러한 형태의 성행위를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오늘날에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진지하고도 무서운 현실이었습니다.
자위하면 귀가 먹고 정신이 나간다?
19세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 자체를 두려워했습니다. 성행위는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위행위, 당시 말로 '오난니아(onania)'는 귀를 멀게 하고 시력을 나쁘게 하며, 심한 경우 정신까지 이상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젊은 남성이 체액을 흘리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하며 소심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세심히 관찰하며 끔찍한 결과를 경고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면? '항자위 벨트'가 등장합니다. 손으로 아무것도 만질 수 없게 만드는 장치인데요. 밤마다 이런 벨트를 차고 잠들어야 했다면, 정녕 욕망도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자위보다 더 무서웠던 것, 동성애
자위보다 더 큰 공포의 대상은 동성애였습니다. 남성 둘 사이의 성행위는 모든 규범에 어긋나는 죄악으로 간주되었죠. 사람들은 성경을 들고 수 세기 동안 이른바 '소돔인(sodomites)'을 비난했습니다.
특히 1730년경에는 공포가 만연했습니다. 아드리아누스 판 플라위턴(Adrianus van Vleuten)과 피터 고데이우스(Pieter Goddeeus)는 로테르담에 정박한 VOC(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박 파트모스호에서 아무런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동료의 남성기와 장난을 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들으면 웃음이 나올 이야기지만, 18세기에는 소름 돋는 현실이었습니다.
매춘과 매독, 그리고 2000년까지 이어진 금지법
매춘 역시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두려움이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전염성 질환인 매독(당시에는 '비너스병'이라 불림)이 수많은 희생자를 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마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창관이 있었고, 1850년에는 네덜란드 군인의 무려 12%가 '성병 및 매독성 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창부들은 정기적인 의무 검진을 받아야 했습니다. 위생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지만, 거리에서 반쯤 벌거벗은 채 서 있는 여성들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했죠.
목사 헨드릭 피어슨(Hendrik Pierson)은 이렇게 길을 잃은 양들의 구원을 염려하며 그들을 구하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는데, 바로 1911년 네덜란드에서 창관이 금지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금지법은 무려 2000년에야 폐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