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는 하나의 조직화된 단일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노예 신분에 놓여 있던 사람들이 자유주나 캐나다로 도망칠 수 있도록 마련된 비밀 경로와 안전가옥(세이프하우스)의 연결망이 바로 지하철도였습니다.
노예 출신으로 폐노예 운동의 선구자이자 지하철도의 최고 안내자가 된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은 약 300명의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위험한 비밀 여정의 길을 처음으로 건넌 '승객'들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지하철도의 초기 탈출자들
넬슨 데이비스(Nelson Davis)
메릴랜드에서 탈출한 25세의 젊은 노예였던 넬슨 데이비스는 필라델피아로 향해 그곳에서 목수로 일자리를 얻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훗날 해리엇 터브먼의 인생 동반자, 즉 남편이 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윌리엄과 엘렌 크래프트 부부(William and Ellen Craft)
1848년 조지아에서 도망친 이 부부는 지하철도 역사상 가장 대담한 탈출 중 하나를 감행했습니다. 밝은 피부색을 지녔던 아내 엘렌은 남성 지주로 변장했고, 남편 윌리엄은 그녀의 종 노릇을 하며 기차와 증기선을 타고 필라델피아까지 이동했습니다. 이후 폐노예주들의 도움으로 더 먼 북쪽, 캐나다와 영국으로 피신하여 자유를 누렸습니다.
헨리 '상자' 브라운(Henry "Box" Brown)
버지니아의 노예였던 헨리 브라운은 1849년, 나무 상자 속에 몸을 웅크린 채 스스로를 '우편물'로 발송하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습니다. 현지 폐노예주들의 도움을 받아 그 또한 캐나다행 길에 올랐으며, '상자'라는 별명은 그의 극적인 탈출을 기리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남았습니다.
생명을 건 여정, 그러나 희망의 빛
이들은 지하철도를 통해 노예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목숨을 내건 수많은 사람들 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지하철도를 따르는 여정은 적발될 경우 혹독한 처벌은 물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모험이었지만, 자유를 꿈꾸던 노예들에게는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등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