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차르 가족은 어떻게 되었나? 로마노프 가족 처형의 전말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은 1918년 총살형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처형의 배경

1918년 여름, 볼셰비키 지도부는 내전에서 백군(白軍)이 동진하며 로마노프 가족을 구출할 가능성이 커지자 깊은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차르 가족과 그들을 따르던 시종들까지 처형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감시병들은 언제든 폭도들의 습격이 있을지 모른다고 두려워했고, 현지 주민들의 분위기 역시 점점 적대적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의 결정, 우랄의 집행

로마노프 가족 처형이라는 볼셰비키 지도부의 최종 결정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내려졌으며, 실제 집행은 중앙집행위원회의 사전 승인 절차 없이 우랄 지역 당원들(우랄리스트)의 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18년 7월 17일, 지하실에서 벌어진 일

우랄 소비에트의 수석 체키스트(비밀경찰 요원)였던 야코프 유롭스키가 처형 집행을 총괄했습니다. 그날 새벽, 유롭스키는 잠자던 로마노프 가족과 그들을 따르던 네 명의 충직한 시종들을 깨워 지하실 한복판으로 데려갔습니다.

유롭스키는 곧 처형이 집행될 것이라고 통보했고, 선고문 낭독을 마치자 총살대가 일제히 발포했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부 총알은 빗나갔고, 또 다른 총알들은 희생자들이 옷에 꿰매 넣은 보석에 맞아 관통하지 못했습니다. 첫 발포 이후에도 가족 구성원 몇몇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고, 유롭스키와 대원들은 권총과 총검으로 남은 이들을 처리했습니다.

시신의 처리와 은폐

이후 시신들은 옷을 벗겨진 채 트럭에 실려 운반되었습니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약 24km(15마일) 떨어진 '가니나 야마(Ganina Yama)'라 불리는 작은 숲속 언덕 근처에 매장되었습니다. 볼셰비키 정권은 초기에는 "차르 니콜라이만 처형되었고 나머지 가족은 안전한 장소로 옮겨졌다"고 발표하며 사실을 은폐했습니다.

그 후 이야기

당시 처형된 이들은 니콜라이 2세, 황후 알렉산드라, 다섯 자녀 올가·타티아나·마리아·아나스타샤·알렉세이, 그리고 의사 보트킨 등 네 명의 시종까지 모두 11명이었습니다. 로마노프 가족의 유해는 오랫동안 행방불명 상태였다가 1991년 예카테린부르크 인근에서 발굴되었고,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2000년 니콜라이 2세 가족을 성인으로 시성하며 그들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추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