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엣 터브먼(Harriet Tubman)이 노예 제도에서 처음으로 탈출을 시도했을 때, 그녀는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에 직면했습니다. 당시 그녀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실패로 돌아간 첫 번째 탈출 시도
해리엣 터브먼의 첫 탈출 시도는 1849년경, 그녀가 약 27세였을 무렵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다른 노예들과 함께 북부의 자유주를 향해 출발했지만, 여정 도중 위험한 강을 건너야 하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안타깝게도 해리엣 터브먼은 병에 걸리고 말았고, 결국 메릴랜드에 있는 주인의 농장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혹한 처벌
탈출 시도에 대한 대가로 해리엣 터브먼은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주인은 그녀를 잔혹하게 구타했고, 그 결과 그녀의 몸에는 평생 남는 흉터와 부상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더해, 처벌의 일환으로 더 힘들고 고된 노동까지 강요당했습니다.
회복과 굳건한 결의
그러나 이러한 고난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해리엣 터브먼의 자유를 향한 열망은 끝내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몸을 추스르며 회복했고, 계속해서 탈출을 꿈꿨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그녀는 은밀히 다음 탈출을 준비하며, 필요한 정보를 조심스럽게 수집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폐지론자들과 신뢰할 만한 인물들과의 연결망을 쌓아 나갔습니다.
두 번째 시도에서 이룬 성공
1850년, 해리엣 터브먼은 두 번째 탈출을 시도했고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번에는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라고 불리는 비밀 경로와 안전가옥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경로를 치밀하게 설계했습니다. 길목곳곳에서 폐지론자들과 동지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녀는 무사히 필라델피아에 도착해 소중한 자유를 손에 넣었습니다.
'컨덕터'로서의 평생의 사명
자유를 얻은 뒤에도 해리엣 터브먼은 자신만 행복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평생을 다른 노예들의 탈출을 돕는 데 헌신했습니다. 여러 차례 위험한 남부로 돌아가, 자신의 안전을 걸고 지하철도의 '컨덕터(안내자)' 역할을 맡아 노예들을 무리지어 자유의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체포와 가혹한 처벌의 위협 같은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도, 해리엣 터브먼의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용기는 수백 명의 노예들을 자유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