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기 전, 유대인 난민들은 어디로 보내졌을까?

홀로코스트 시기, 유대인 난민과 유대인 주민들은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기 전에 대부분 게토(ghetto)라 불리는 격리 지역에 먼저 수용되었습니다. 게토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활용한 첫 번째 단계였습니다.

게토란 무엇이었나?

게토는 도시 내 특정 구역을 장벽이나 울타리로 둘러싸 외부와 차단한 격리 지역을 의미합니다. 나치는 점령지, 특히 폴란드 전역의 도시들에 게토를 설치하고 유대인들을 그곳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바르샤바 게토와 우치(Łódź) 게토가 대표적인 사례로, 한때 수십만 명의 유대인이 극도로 협소한 공간에 갇혀 지냈습니다.

비참한 생활 환경

게토의 생활 여건은 극악했습니다. 원래 소수의 인원이 거주할 공간에 수배에서 수십 배에 달하는 인구가 밀집해야 했으며, 식량 배급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치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상수도와 하수 시설이 부족해 위생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티푸스를 비롯한 전염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수용소로 이송되기 전에도 수많은 유대인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게토에서 강제 수용소로

게토는 어디까지나 임시 격리 시설에 불과했습니다. 1942년부터 나치는 '최종 해결(Endlösung)'이라 명명한 유대인 말살 계획에 따라 게토 주민들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트레블링카 등 절멸 수용소로 대규모 이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항하던 바르샤바 게토조차 1943년 봉기 진압 후 완전히 청소되면서, 게토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