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가장 급진적인 얼굴로 불린 장 폴 마라(Jean-Paul Marat)가 하수구에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하수구가 아니라 자택의 욕조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1793년 7월 13일, 지롱드파를 지지하던 젊은 여성 샤를로트 코데이(Charlotte Corday)가 목욕 중이던 마라를 찔러 암살한 것입니다.
혁명가 마라, 어떤 인물이었나
마라는 신문 『인민의 친구(L'Ami du peuple)』를 발행하며 혁명 진영에서 가장 과격한 목소리를 낸 인물입니다. 그는 '국민의 적'에 대한 처형을 공공연히 주장했고, 이 때문에 온건파인 지롱드파에게는 두려움이자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왜 욕조에서 일했을까
마라가 목욕탕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던 것은 취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만성 피부 질환을 앓고 있어 가려움과 통증을 달래기 위해 하루의 상당 시간을 따뜻한 물속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병중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욕조 위에 판자를 걸쳐 임시 책상을 만들고, 그곳에서 원고를 쓰고 방문객을 접견하기도 했습니다.
샤를로트 코데이의 암살
1793년 7월 13일, 노르망디 카앙 출신의 24세 귀족가 딸 샤를로트 코데이가 파리의 마라 저택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카앙에서 반역자들이 활개치고 있다며 그 명단을 직접 전하겠다며 접견을 요청했고, 결국 허락을 받아냅니다. 마라가 욕조 안에서 이름들을 적고 있던 그 순간, 코데이는 숨겨온 식칼로 그의 가슴을 한 번 찔렀고, 마라는 거의 즉사했습니다.
코데이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거친 뒤 같은 해 7월 17일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폭력 선동을 막은 의거자로 여겼다고 전해집니다.
'마라의 죽음'이 남긴 이미지
마라의 죽음은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명화 『마라의 죽음』으로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욕조에서 쓰러진 마라를 순교자처럼 그려내 당시 혁명 정부의 선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결국 마라는 하수구에 숨어 있던 인물이 아니라, 병든 몸으로 욕조에서까지 혁명 선전에 몰두하다가 암살당한 인물입니다. '하수구'라는 이미지는 그의 은둔에 가까운 생활 방식과 극적인 죽음이 뒤섞이며 만들어진 후대의 오해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