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913년은 유럽, 북아프리카, 동유럽 전역에서 정치적 지형이 크게 흔들린 해였습니다. 제국의 흥망성쇠, 왕조의 교체, 종교 세력의 부상이 겹치면서 이후 수백 년간 이어질 역사의 흐름이 이 무렵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913년을 장식한 주요 사건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비잔티움과 불가리아, 발칸반도의 긴장
비잔티움 제국과 제1차 불가리아 제국 사이의 오랜 갈등은 913년에 결정적 국면을 맞았습니다. 같은 해 6월 비잔티움 황제 알렉산드로스가 후계 문제를 정리하지 못한 채 사망하면서 제국은 어린 콘스탄티노스 7세를 옹립한 섭정 체제로 들어섰습니다. 이 혼란을 틈타 불가리아의 시메온 1세가 대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 성벽까지 진격했고, 협상 끝에 연공 납부 등 유리한 조건을 얻어냈습니다. 더 나아가 시메온은 스스로 '황제(차르)'의 칭호를 내걸며 발칸반도의 새 질서를 선언했습니다. 양국의 대결은 이후 917년 아켈로스 전투에서 비잔티움군의 참패로 이어지며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장왕 에드워드, 바이킹의 물결을 막다
잉글랜드에서는 웨식스의 에드워드 국왕, 이른바 '장왕 에드워드'가 바이킹 세력에 대한 반격을 본격화했습니다. 913년에도 헤트포드와 위덤 등에 요새 도시인 버(burh)를 잇달아 축조하며 방어망을 확장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대알프레드가 세운 요새 체계를 계승·발전시켜 덴마크계 바이킹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저지했고, 이 과정에서 앵글로색슨 세력은 잉글랜드 전역에 대한 지배력을 넓혀가며 훗날 통일 잉글랜드 왕국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새 강자, 파티마 칼리파조
시리아에서 기원한 이스마일파 시아 운동인 파티마 왕조는 909년경 튀니지 일대에서 칼리파조를 선포한 뒤 빠르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913년 무렵 파티마 세력은 북아프리카에서의 지배를 공고히 하며 알제리와 모로코 방면으로 영향력을 뻗어 나갔고, 이후에는 이집트까지 손길을 뻗쳐 당대 이슬람 세계 최대 세력인 압바스 칼리파조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수니파 중심의 압바스 왕조와 대립하는 또 하나의 칼리파조 출현은 이슬람 정치·종교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루스'라는 이름, 동유럽의 새로운 주역
동유럽에서는 비잔티움 제국과 루스(바랑기아 출신 상인·전사 집단) 사이의 통상 및 외교 관계가 조약 형태로 정비되면서 '루스'라는 명칭이 기록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니프로 강 유역의 교역로를 장악한 루스 세력은 비잔티움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 나갔고, 이는 훗날 키예프 루스로 이어지며 '러시아'라는 국가 정체성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동프랑크 왕국과 오토 왕조의 부상
913년 당시 동프랑크 왕국(오늘날 독일 지역)의 왕위는 콘라트 1세가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의 통치는 지방 공작들의 강한 자율 성향 앞에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센 공작 가문을 중심으로 한 오토 왕조가 차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936년 즉위한 오토 1세, 이른바 '오토 대제'는 중앙유럽 통합 제국의 구상을 현실화했고, 오토 왕조는 이후 중앙유럽과 이탈리아를 아우르며 신성로마제국의 초석을 놓는 등 중세 유럽사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예술과 문화의 꽃핀 10세기
10세기는 세계 각지에서 예술, 문학, 건축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필사본 삽화 예술이 한층 정교해졌고, 유럽에서는 훗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이어질 건축 미술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랍 문학이 절정기를 맞았으며, 비잔티움에서는 고전 학문을 되살리는 '마케도니아 르네상스'가 꽃피면서 당대 최고의 문화적 번영을 자랑했습니다.
이처럼 서기 913년은 군사적 충돌과 정치적 변혁, 문화적 성취가 한데 얽힌 격동의 해였습니다. 발칸반도의 권력 다툼, 잉글랜드의 통일 과정, 북아프리카의 새로운 이슬람 세력, 동유럽의 성장 등 이 시기의 변화들은 이후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의 역사가 그려지는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밑그림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