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7월 :
- 하퍼스 페리 습격 :존 브라운은 21명의 병사들과 함께 버지니아주 하퍼스 페리(현 웨스트버지니아)에 있는 연방 무기고와 무기고에 무장 공격을 가했습니다.
- 브라운의 목표는 무기와 보급품을 탈취해 노예 반란을 선동하고 산지에 임시정부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1859년 10월 :
- 캡처 :로버트 E. 리 대령이 이끄는 연방군이 이틀 동안 포위 공격을 가한 끝에 브라운 일행은 패배했다. 브라운은 체포되어 포로로 잡혔습니다.
- 분쟁 중에 브라운의 아들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1859년 11월 :
- 재판과 유죄판결 :브라운은 반역, 살인, 노예 반란 선동 혐의로 버지니아 주 찰스 타운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 재판은 브라운이 양극화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노예 제도를 종식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변호했습니다.
1859년 12월 2일 :
- 실행 :유죄판결을 받은 존 브라운은 교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처형은 찰스 타운의 제퍼슨 카운티 법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 브라운은 "나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살릴 대의를 위해 죽어가고 있다"고 반항적으로 처형당했습니다.
브라운의 처형 이후 이 사건은 미국 남북전쟁을 앞두고 중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브라운의 행동은 북부와 남부 사이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고, 노예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는 데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