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역사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기원전 2778~2260년): 피라미드와 파라오 문명의 황금기

제3왕조부터 제6왕조까지: 고왕국

고왕국(Old Kingdom)은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찬란하고 창조적이며 조화로웠던 첫 번째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약 50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기원전 2778~2260년): 피라미드와 파라오 문명의 황금기

고대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

대부분의 가옥은 방이 한두 개에 불과했지만, 부유층은 넓고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주 큰 연회를 열었는데, 풍성한 술과 음식이 차려지고 음악가·가수·무희·곡예사들이 공연을 펼쳤습니다. 하인들은 손님들의 머리 위에 향기로운 지방을 빚어 만든 원추형 장식을 얹어 주었는데, 이것이 녹으면서 머리카락에 향기가 배어나는 독특한 풍습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사냥과 낚시를 즐겼으며, 레슬링과 검술 같은 운동도 했습니다. 농업 분야에서는 밀과 보리가 주요 작물이었는데, 이곡물로 빵과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포도와 석류도 재배하여 포도주를酿造했습니다. 가축을 치기도 했지만 이집트에는 목초지가 드물어 가축은 대개 축사 안에서 길러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도시의 신전에서 일했습니다. 장인, 조각가, 목수, 도공, 직조공, 서기관 등이 그 예입니다. 신전에는 학교도 있었는데, 부유한 가정의 소년 몇몇이 이곳에서 읽고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이가 든 학생들은 역사, 지리, 종교, 언어, 수학, 의학 등 상위 과목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여아는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집에서 어머니에게 교육받았습니다.

농민들은 나일강 홍수기 동안 파라오의 밭에서 강제로 일해야 했으며, 보수라고 해봐야 빵과 맥주 한 줌이 전부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기원전 2778~2260년): 피라미드와 파라오 문명의 황금기

중앙집권적 행정 체계의 구축

파라오들은 백성의 통합, 국가의 안정, 종교적 신념의 존중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state)'라 불리는 중앙집권적 행정 체계를 세웠습니다. 이 체계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 파라오 본인: 스스로를 신들의 첫 번째 종복이자 대리자, 최고 사제, 수석 행정관, 군대의 총司令官으로 선포했습니다.
– 재상(vizier): 파라오가 임명하며, 최고 판사이자 행정 수반으로서 주로 농업과 수공업 중심인 국가 경제를 총괄했습니다.
– 다수의 '장(長)'들: 곡창 관리청 장관, 농지 관리관 등.
– 하급 관료(노마르크, nomarch)와 서기관: 세금을 징수하고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며 모든 것을 기록했습니다. 파라오는 이들에게 봉급 대신 재산과 토지(농민에게 경작시킴), 신전을 하사했는데, 이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사후 자신의 숭배 의식을 후원할 만큼 충분한 자원을 갖도록 보장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사회·문화적 발전

중앙집권 행정이 확립되면서 경제는 생산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고, 수확량이 잦은 흉년 없이 잉여를 남기며 다음과 같은 성과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 채굴 및 광산 개발 사업 재정 지원 (이집트 땅에는 금광이 많았습니다)
– 다양한 공공시설 건립
– 농경 기술 개선
– 탁월한 예술품 제작 지원
– 거대 기념물 건설
– 무역 관계 확대
– 군대 강화
– 국가 통치력 강화

이집트인들이 터득한 학문과 기술

– 측량술: 개인이 소유한 토지의 면적을 측정하는 기하학적 기술로, 세금은 이 면적을 기준으로 부과되었습니다.
– 수학
– 의학
– 선박 제조술: 현존하는 최초의 선박은 이집트산으로, 도로가 드문 이집트에서 선박은 가장 좋은 이동 수단이었습니다.
– 토기 제작술
– 문학
– 예술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기원전 2778~2260년): 피라미드와 파라오 문명의 황금기

신전과 종교

이집트인들은 나일강변에 거대한 석조 신전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들과 여신들이 깃든다고 믿었습니다. 각 지역마다 고유의 수호신이 있었고, 각 신전에는 그 신이 깃든 신상(神像)이 모셔졌습니다. 매일 아침 사제들은 신을 깨워 신상을 씻기고 옷을 입히며 음식을 바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일반 백성은 결코 신전 안에 들어갈 수 없었고, 신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은 신을 위한 축제 때 신상이 도시를 행렬하던 날뿐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기원전 2778~2260년): 피라미드와 파라오 문명의 황금기

미라 제작과 장례 의식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가 내세에서 계속 산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사후의 삶은 현세의 삶보다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여러 영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들이 죽음 이후 육체에서 분리되지만 시신과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습니다.

아크(Akh)는 왕과 신만이 지닌 불멸의 원리입니다. 바(Ba)는 육체로부터 독립되어 죽음 후 자유를 되찾는 존재입니다. 마지막으로 카(Ka)는 생명력으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미라·석상·초상 같은 담체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일상 모습을 표현한 초상은 그의 카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중왕국 시대에는 여기에 심장이라는 영적 요소가 추가됩니다.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방부 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고인의 콧구멍으로 갈고리를 넣어 뇌를 제거하고, 부싯돌 칼로 시신의 왼쪽 옆구리를 절개하여 내장을 꺼냈습니다. 뇌와 마찬가지로 내장은 '카노푸스 단지'라 불리는 장례용 그릇에 보관되었습니다. 그다음 시신 내부를 아마포, 나트론(천연 소금), 톱밥, 향신료로 채우고 꿰매어 향료를 입힌 뒤, 70일간 나트론 용액에 담가 말렸습니다. 이후 향수에 적신 가늘고 긴 아마포 여러 겹으로 시신을 감쌌으며, 붕대 사이사이에 경문, 보석, 부적을 넣었습니다. 사제들은 마법의 도구로 파라오의 귀, 코, 입에 접촉하여 내세에서도 감각을 사용할 수 있게 보장한 후, 미라의 얼굴에 가면을 씌웠습니다. 고왕국 시대에는 오직 파라오만이 이러한 의식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사자의 서

장례 경문이 적힌 파피루스 두루마리로, 미라 곁에 두거나 붕대 속에 끼워 넣었습니다. 사자의 서의 각 필사본은 모두 동일하지 않았으며, 수혜자는 자신의 형편에 맞게 경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필사본에 담긴 글들은 상당한 재정적·물질적·영적·도덕적 투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필사본은 짧은 반면, 어떤 것은 전체 또는 거의 전체 경문을 담기도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기원전 2778~2260년): 피라미드와 파라오 문명의 황금기

석관(사르코파구스)

미라는 석관에 안치되었습니다. 최초의 석관은 단순한 나무 상자였습니다. 이후 신왕국 시대가 되면 미라는 밝은 색으로 채색된 사람 형태의 관 두세 개에 차례로 넣어 겹쳐 안치되었습니다. (사진 속: 직사각형 안에 그려진 우자트(Wedjat)의 눈은 고인이 바깥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석관 뚜껑 위에는 고인이 내세에서 함께 사용할 일상용품들이 놓였습니다. 여기에는 나무 협탁, 목걸이, 구리 거울, 화장품 용기, 샌들 한 켤레가 보입니다.)

무덤과 피라미드

부유한 이집트인들의 석관은 보물로 가득한 무덤에 안치되었습니다. 고왕국과 중왕국 시대의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위해 '피라미드'라 불리는 거대한 무덤을 세웠습니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이며, 파라오들이 지닌 권력을 상징합니다. 이집트에는 30개가 넘는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자신의 '영원한 처소'를 짓는 일은 당시 군주들의 집착이었다고 합니다.

성문(피라미드 텍스트)

장례식에서 사제들은 파라오가 하늘로 승천하여 신들과 하나가 되도록 긴 종교 경문을 낭송했습니다. 이렇게 정화된 파라오는 신들의 공물을 누릴 수 있고, 사후 세계의 위험, 뱀의 물림, 악령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기원전 2470년, 파라오 우나스의 통치기부터 이러한 성스럽고 '마법적인' 경문들이 피라미드 벽면에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내세를 위한 파라오의 변신

피라미드는 각기 고유한 기능을 지닌 여러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석관실에서 파라오는 새로운 오시리스가 되어 태양의 몰락을 관장하는 신 아툼과 하나가 됩니다. 전실에서는 항해를 준비하며 하늘의 신이 됩니다. 회랑에서는 변모한 파라오가 자신의 무덤 빗장이 열리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을 위해 지어 무덤에 안치된 태양의 배에 올라타 오시리스의 왕국을 건너 내세로의 여정을 떠납니다.

기원전 2700년경: 건축 열풍

세계 곳곳에서 인류는 건축 열풍에 사로잡혔습니다. 인더스 강변에서 나일강 동안까지, 스웨덴에서 몰타 섬까지, 유럽 연안을 따라 도시와 피라미드, 신전과 돌멘(dolmen)이 세워졌습니다. 이 기념물들은 당시 인류의 과학과 정신세계에 대한 물음표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의문이 제기됩니다. 일상의 빵조차 보장되지 않던 시대에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가? 이집트인들은 왜 채찍에 몰리든, 아니면 자발적으로든, 수 톤짜리 석재를 수천 킬로미터를 옮겨야 할 필요를 느꼈는가? 세계사에서 이처럼 격렬한 건축 열광의 비교 사례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기원전 2778~2260년): 피라미드와 파라오 문명의 황금기

기원전 2691년경 (연대 불확실): 최초의 계단식 피라미드

유명한 파라오 조oser(Djoser)는 자신의 재상이자 건축가인 임호텝(Imhotep)에게 사카라에 '영원한 처소'를 지어달라고 명했습니다. 무덤의 지상부는 원래 높이 8m의 전통적인 직사각형 마스타바(mastaba)로, 흰 석회암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건물은 진흙 벽돌보다 시간을 잘 견디는 돌로 지어졌습니다. 장례 의식 후 파라오의 석관이 안치될 묘실은 지하 28m 깊이에 위치하며 긴 회랑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 회랑은 3.5톤짜리 석재로 막혔지만, 그럼에도 무덤은 도굴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주묘 주변에는 수많은 부속실이 파였고, 파라오 사후에는 약 4만 개에 달하는 항아리, 접시, 컵, 그릇과 함께 음식과 음료가 봉헌되었습니다.

임호텝은 마스타바를 확장하고 길이 1,600m의 담장으로 둘러쌌으며, 담장에는 14개의 가짜 문을 장식했습니다. 출입이 허용된 좁은 문은 단 하나뿐이었는데, 문짝은 없었고 밤낮으로 경비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신전, 예배당, 중정들을 지어 파라오가 내세에서도 다스릴 수 있는 장례 복합단지를 완성했습니다. 담장 위로 단지가 보이도록 임호텝은 하나씩 작아지는 다섯 겹의 구조물을 포개 올렸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최초의 계단식 피라미드입니다! 높이 60m에 달하는 이 피라미드는 노동자들이 깎은 수천 개의 돌로 이루어졌습니다. 피라미드는 하늘로 뻗은 계단을 상징하며, 신들에게로 오르고자 하는 파라오의 열망을 드러냅니다.

기원전 2625년경 (연대 불확실): 최초의 평활면 피라미드

스네프루(Snefru)는 사카라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자신의 영원한 처소를 지었습니다. 백성에게 자비로웠던 스네프루와 달리, 그의 후계자들은 폭군으로 묘사되지만 그들의 내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헤로도토스(기원전 484년 출생의 그리스 역사가)는 쿠푸와 카프레의 잔혹함에 대해 이집트인들이 들려준 끔찍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기원전 2600년경 (연대 불확실): 기자 피라미드 건설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기원전 2778~2260년): 피라미드와 파라오 문명의 황금기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들은 멤피스 근처 기자(Giza)의 광대한 장례 복합단지 중심에 자리합니다. 가장 큰 것은 스네프루의 아들인 파라오 쿠푸(Cheops)가 지은 것으로, 높이 147m에 200만 개가 넘는 석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피라미드는 지역 주민들이 외장석을 자기네 건축에 쓰기 전까지 사막에서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이후 그의 아들 카프레(Kephren)가 아버지의 피라미드 옆에 자신의 것을 지었는데, 높이 144m로 더 좁은 형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카프레의 아들이거나 형제인 멘카우레(Mykerinus)가 세 개 중 가장 작은 피라미드를 지었는데, 이것도 '고작' 62m 높이였습니다. 세 피라미드는 기하학적으로 완벽합니다. 당시 이집트의 기술자들은 극히 소박한 수단으로 이런 기념물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건축 방법은 오늘날까지도 불확실하게 남아 있습니다.

기원전 2550년경 (연대 불확실): 대스핑크스 건설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 (기원전 2778~2260년): 피라미드와 파라오 문명의 황금기

카프레가 대스핑크스를 건설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를 대피라미드나 이 파라오의 기념물과 직접 연결하는 증거는 없습니다. 게다가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를 얹은 이 표현은 이집트인들이 신을 '인간의 몸에 짐승의 머리'로 그리던 관습을 뒤집은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거대 기념물을 최초의 위대한 파라오 오시리스에게 바치는 경의로 세운 고대 이집트 민족의 작품으로 돌립니다. 스핑크스는 죽은 파라오처럼 네메스(nemes) 두건을 쓰고 있으며, 사자의 몸은 높이 20m, 길이 71m에 이릅니다. 그는 사후 세계를 지키는 수많은 황갈색 스핑크스 중 가장 큰 존재입니다.

이집트와 주변 지역

파라오들은 국경을 넘는 원정을 통해 이집트의 안보를 확보하고 부를 늘렸습니다. 누비아에서는 파라오 사낙트, 쿠푸, 사후레, 네우세레, 페피 1세, 페피 2세의 군대가 지나갔음을 증명하는 비문이 발견됩니다. 스네프루는 누비아와 리비아인을 상대로 원정을 벌였고, 시나이에서는 청록석 채굴을 명했습니다. 고왕국 시대 내내 팔레스타인인과 아시아 유목민(베두인)의 약탈은 격퇴되었고, 건축에 필수적인 귀중한 목재를 실어 오는 레바논발 선박의 보호도 이루어졌습니다.

기원전 2260년경: 고왕국의 종말

고왕국의 5세기 동안 파라오들이 백성에게 행사하던 절대 권위와 권력은 서서히 약화되었습니다. 중앙집권적 행정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졌고, 노마르크(주현백)들이 딸과의 혼인 같은 방식으로 파라오의 최고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페피 2세는 고왕국의 마지막 파라오였지만, 지나치게 온화한 그는 고위 관료와 노마르크들의 커져가는 독립 기풍을 꺾지 못했고, 이들은 실질적인 영주권과 독립 공국을 세워 나갔습니다.

고왕국 시대의 왕조와 파라오 목록

제3왕조 (기원전 2778~2723년)

조oser(최초의 계단식 피라미드), 세켐케트, 사낙트 또는 네브카, 카바, 네페르카, 후니

제4왕조 (기원전 2723~2563년)

스네프루, 쿠푸(첫 번째 대피라미드), 제드프레(디도프리), 카프레, 멘카우레, 셉세스카프

제5왕조 (기원전 2563~2420년)

우세르카프, 사후레, 네페리르카레, 셉세스카레, 네페레프레, 네우세레, 멘카우호르, 이세시, 우나스

제6왕조 (기원전 2420~2260년)

테티, 우세르카레, 페피 1세, 메렌레, 페피 2세 (이집트 역사상 가장 긴 통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