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역사

570~634년: 무함마드와 이슬람의 태동

홍해, 인도양, 페르시아만에 둘러싸인 아라비아 반도는 비옥하고 풍요로운 '행복한 아라비아(현 예멘)'와 베두인 부족이 낙타 대상과 염소 떼를 몰고 누비는 척박한 '사막의 아라비아'로 나뉜다. 7세기 초, 이슬람교 창시 이전 아라비아는 극심한 무질서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자가 부족할 때면 베두인들은 '가지아(razzia, 습격)'를 통해 다른 부족을 약탈하며 생존했다. 당시 개인은 약 10개의 씨족으로 구성된 '부족'에 속하며 그 보호를 받았다.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의 종교 환경

당시 아라비아에는 다신교를 믿는 아라비아인, 유대교도, 기독교도가 공존하며 각자의 신을 섬겼다. 유목민과 도시 거주자 할 것 없이 두 개의 쇠퇴하는 대제국과 접촉하고 있었다. 북쪽으로는 기독교도(및 유대교도, 이교도)가 주를 이루는 비잔티움 제국, 동쪽으로는 조로아스터교(단일신교)를 믿는 페르시아 제국이 있었다.

메카: 상업과 성지의 도시

서부 아라비아 히자즈 산악 지대에 위치한 메카는 아라비아인들에게 중요한 성지 순례지이자 대상 무역의 중심지였다. 예멘과 중동을 잇는 무역로를 장악해 반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였으나, 자원이 한정되어 기근에 시달리는 소도시에 불과했다.

카바 신전과 다신교 신앙

메카 주민 대다수는 다신교도이자 미신에 깊이 젖어 있었으며, 정령(진)을 두려워하고 우상을 숭배했다. 메카 중심에는 회색 돌로 된 거대한 정육면체 건물 '카바'가 있었고, 그 안에는 검은 운석(흑석)이 안치되어 있었다. 부족들은 이곳에 저마다의 우상을 모셨고, 순례객이 몰려들며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원천이 되었다.

메디나: 유대교도의 터전

메카에서 북쪽으로 400km 떨어진 메디나(야스리브)는 주로 유대교도들이 거주하며 대추야자 농장, 세공, 무역으로 생계를 꾸렸다. 이들은 서기 70년 로마의 예루살렘 제2성전 파괴 후 팔레스타인에서 피난 온 히브리인의 후예이기도 했다.

토라와 경전의 권위

다신교도, 유대교도, 기독교도 모두 아랍 사회의 일원으로서 '토라(율법서)'를 공통의 권위로 인식했다. 토라와 복음서는 비잔티움, 페르시아, 인도에서 향신료와 직물을 실은 대상에 의해 사막을 건너 전해진 희귀하고 귀한 '성서'였다. 이 경전들은 유일하고 전능한 신을 증언했으며, 대다수 문맹인 다신교 아라비아인들에게는 거의 마력적인 권위로 다가왔다.

무함마드의 탄생과 성장 (570년경)

무함마드(마호메트)는 메카의 유력 다신교 부족인 쿠라이시 부족(아랍어로 '상어'란 뜻)에서 태어났다. 태어나기 두 달 전 아버지를 잃고, 여섯 살에 어머니마저 여읜 뒤 할아버지, 다시 삼촌 아부 탈리브의 손에 자랐다.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유년기였으나 그는 정직하고 신의가 두터우며 도덕적인 인격으로 성장했다. 12세 때 삼촌을 따라 시리아로 대상 무역을 갔다가 한 수도승으로부터 예언자의 징표를 가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부유한 과부 하디자와의 결혼 (595년)

청년기 대상 무역에 종사하던 무함마드는 40세의 부유한 과부 하디자의 무역 대리인으로 일하게 된다. 그의 지성과 인품에 감복한 하디자가 15살 연하인 그에게 청혼했고, 무함마드는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 슬하에 두 아들(요절)과 네 딸을 두었다.

영적 탐구와 이슬람의 탄생 (610년경)

40세가 된 무함마드는 뿌리 깊은 다신교적 환경 속에서도 토라와 복음이 말하는 유일신을 찾아 나섰다. 그는 메카 외곽 히라 산 동굴에서 명상에 잠기곤 했는데,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너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신적 계시를 전했다. 계시는 지속되었고, 아내 하디자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무함마드는 포교를 시작했다. 그는 초월적이고 전능하며 자비로운 '유일신(알라)'을 힘차게 설파했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 아닌 신의 말씀이 자신을 통해 전달됨을 의미했다. 이렇게 '알라의 뜻에 복종'을 뜻하는 제3의 유일신교, 이슬람이 태동했다. 초기 신도들은 그를 '새로운 예언자'로 받들었고, 계시의 말씀은 기독교뿐 특히 유대교의 전통을 많이 참조했다(금돼지, 예루살렘 방향 예배, 금식 등). 당시 문자가 드물어 무함마드의 말씀은 구전으로 전승되었고, 순례객과 여행자들을 통해 퍼져나가며 수라(장)와 아야(절)로 엮여 나중에 '꾸란(낭독)'이 되었다.

메카 내부의 종교 갈등

초기 무슬림은 소수였으나, 카바 신전을 관리하며 순례 수입을 독점하던 쿠라이시 부족 지도부에는 큰 위협이었다. 무함마드가 동족임에도 우상 숭배를 비난하며 순례 수입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였다. 결국 하심 가문의 새 수장 아부 라합이 무함마드에 대한 부족의 보호를 철회하여, 그가 암살당해도 처벌받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하디자의 죽음과 이후의 결혼들 (619년)

무함마드는 23년간 하디자만 바라보며 일부다처제가 관례인 사회에서 조롱을 견뎠다. 사별 후 그는 11명의 아내와 2명의 첩을 맞이했는데, 대부분 정치적 동맹 차원이었으나 충직한 조언자 아부 바크르의 딸 아이샤를 가장 아꼈다. 아이샤는 결혼 당시 10세였고, 무함마드는 임종 시 그녀의 무릎을 베고 숨을 거두었다.

헤지라: 메카 추방과 메디나 이주 (622년)

메카에서의 입지가 좁아지자 무함마드는 75명의 추종자와 함께 하룻밤 새 고향에서 추방당했다. 당시 부족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정체성을 상실함을 의미했다. 이 고통스러운 망명(헤지라, '이주')은 무슬림 공동체 탄생의 기점이 되었으며, 이슬람력(히즈라력)의 원년이 되었다.

메디나 도착과 유대교 부족과의 만남

메디나에는 바누 나디르, 바누 쿠라이자, 바누 카이누카라는 3대 유대교 부족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서책과 이야기를 통해 알던 '지적 유대교'가 아닌, 실제 율법과 관습을 지키는 '현실의 유대교'와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유대교도와의 신학적 갈등

무함마드는 유대교도들이 자신의 절대적 유일신관을 인정하고 새 예언자로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했다. 랍비들과 신학적 논쟁을 벌이며 유일신이라는 공통분모를 확인했으나, 유대교도는 무함마드를 최후의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꾸란이 유대교 경전을 수정·보완한다는 주장도, 새로운 이념도 수용하지 않고 조상의 전통을 고수했다. 이는 기독교가 구약을 신약으로 대체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계시와 차이를 어떻게 수용하거나 거부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메카 다신교도의 공격과 불안정한 동맹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해관계에 따른 동맹은 형성되었다. 무함마드는 종교 지도자를 넘어 정치·군사 지도자로서 3대 유대교 부족을 무슬림 공동체 휘하에 결집시켰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이 커지며 기존 유대 부족의 보호 네트워크가 약화되자, 그들은 이슬람의 성장을 위협으로 느끼며 동맹은 위태로워졌다.

첫 모스크의 건립

메디나에 첫 무슬림 성원(마스지드, '예배드리는 곳')이 세워졌다. 모스크는 무슬림이 예배하는 장엄한 건축물로, 미나렛(첨탑)에서 무에진이 예배를 알린다. 우상 숭배 금기상 인물·동물 그림은 금지되고 기하학적 모자이크로 장식된다.

바드르 전투의 승리 (624년)

메카 군대가 메디나를 공격해 왔으나, 열세였던 무함마드 군은 분전 끝에 승리했다. 꾸란은 3천 천사의 도움으로 이겼다고 기록한다. 개선한 군대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아라비아 전역으로 이슬람 개종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메디나 유대 부족과의 연이은 충돌

승리 후 이슬람 개종자가 늘자 바누 카이누카 부족이 반발하며 무슬림과 충돌했고, 다른 두 부족은 방관했다. 무함마드는 그들에게 유예 기간을 주고 재산과 무기를 놔둔 채 추방했다. 이어 바누 나디르 부족과도 충돌해 추방시켰다. 마지막으로 남은 바누 쿠라이자 부족은 무함마드와의 동맹을 배신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양측이 합의한 중재인은 성인 남성은 처형하고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 것을 판결했는데, 이는 당시 전쟁 관행으로 흔한 일이었다.

하이바르 오아시스 정복과 지즈야 제도 확립 (625~629년)

추방당한 바누 나디르 부족이 피신한 하이바르는 농경과 요새를 겸비한 난공불락의 부유한 곳이었다. 장기 포위 끝에 무함마드가 점령하자, 바누 나디르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는 대가로 세금(지즈야)을 바치겠다고 제안했고 무함마드는 이를 수락해 막대한 부를 얻었다.

디미(보호민) 지위의 일반화

이후 전투나 무혈 입성 시 유사한 조약이 반복되며 유대교·기독교 부족이 이슬람 통치하에 편입되었다. 이는 '디마(보호와 복종)' 제도로 정착되었다. 자발적으로 타 부족(공동체)에 편입되어 세금(지즈야)을 내는 대가로 생명과 재산,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으나, 말과 칼을 차거나 무기를 소지할 수 없는 등 군사적 권리는 박탈당하는 2등 신분이었다.

메카 정복과 카바의 탈환 (630년)

무슬림에게 카바는 이브라힘(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세운 신전으로, 메카 다신교도들이 우상을 들여와 더럽힌 성지였다. 무함마드의 거듭된 공세와 개종 물결에 위축된 메카는 무혈 항복했다. 무함마드는 즉시 카바로 들어가 우상들을 파괴했고, 이교도 순례 의식을 이슬람 순례 의식으로 대체했다. 메카는 이슬람의 '성도(聖都)'가 되었고 카바는 '알라의 집'이 되었다.

독자적 종교로의 정립: 오주(五柱)와 교리 체계화 (630~631년)

아라비아 반도 내 입지를 굳힌 무함마드는 자신을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은 메디나 유대교도들과 결별하고, 유대교에서 차용했던 관습들을 수정하며 독자적 종교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는 이슬람사 최대 전환점이다. 초기 계시가 유대교 유일신관과 토라에 가까웠음에도 독자 노선을 걷게 된 것이다.

무슬림의 5대 의무(아르칸, 오주)

  • 신앙 고백(샤하다):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를 3회 암송함으로써 개종이 성립된다.
  • 예배(살라트): 예배 방향(키블라)을 예루살렘에서 메카(카바)로 변경하고, 하루 3회(유대교)에서 5회로 의무화했다.
  • 희사(자카트/사다카): 부유층이 내는 의무적 구제세다.
  • 순례(하즈): 일생에 한 번 메카 순례를 의무화했다.
  • 단식(사움): 유대교의 속죄일(욤 키푸르)이 아닌 이슬람력 9월 라마단 달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금식·금연·금욕한다.

아브라함·이스마엘·이삭 서사의 재해석

유대교와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아들 문제를 놓고 대립한다.

  • 토라(유대교): 아브라함은 유대교의 조상. 사라의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고, 99세에 사라에게서 이삭을 얻는다. 사라의 질투로 이스마엘과 하갈이 쫓겨나고, 신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명했다가 양으로 대체케 한다.
  • 이슬람 전통: 아브라함(이브라힘)은 아랍인의 시조이자 최초의 무슬림(순종자). 제물로 바쳐진 아들은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다. 무함마드는 이 변경을 통해 '선민' 독점을 유대교가 갖지 못하게 하고 아랍인도 신의 축복을 받은 백성임을 주장했다.

무함마드의 사망과 초대 칼리파 (632년)

632년 무함마드가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 이슬람의 세력은 아라비아 반도에 국한되어 있었다. 측근들은 예언자의 대리인 '칼리파'를 선출했는데, 최초의 칼리파는 가장 가까운 동지 아부 바크르였다. 그 역시 2년 만에 사망했다.

하지(Hajj): 생애 단 한 번의 대순례

이슬람 5대 기둥(제5주)인 하지 순례는 이슬람력 12월(두 알히자) 8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다. 순례자는 무함마드의 행적을 재현하며 속죄와 거듭남을 기원한다.

주요 일정

  • 8일: 이흐람(순례복, 흰 천 두 장) 착용 후 마스지드 알하람에서 정오 예배, 카바 7바퀴 도는 타와프, 사파와 마르와 언덕 사이 7회 왕복(사이), 잠잠샘 물 마시기, 미나로 이동해 예배.
  • 9일: 아라파트 산(20km)에서 정오부터 일몰까지 기도(우쿠프), 무즈달리파로 이동해 기도 및 자마라(기둥) 돌멩이 채집.
  • 10일(이드 알아드하): 미나로 돌아와 이블리스(악마)를 상징하는 3개 기둥에 돌 던지기(라미), 이브라힘이 이스마엘 대신 바친 양을 기념해 제물 바치기(낙타/소 7인 공유, 염소 1인), 타와프와 사이 반복, 잠잠샘 물 마시기.
  • 11~12일: 미나에서 3개 기둥(소·중·대)에 각각 7개씩 돌 던지며 "알라후 아크바르" 외치기, 남성 삭발·여성 머리카락 자르기로 순례 종료.

무함마드는 "성관계와 대죄 없이 순례를 마치면 어머니가 낳아준 날처럼 죄에서 해방된다"고 약속했다.

이슬람 교리: 천사, 예언자, 경전, 최후의 심판

무슬림은 성별 없는 천사, 천사보다 높은 예언자(신의 계시 전달자), 계시된 경전들, 최후의 심판을 믿어야 한다. 순나(전승)는 무함마드의 언행록으로, 히잡 착용은 권장(의무 아님), 남성의 금·비단 금지(향수는 허용), 음주 80대 태형 등 경건한 무슬림이 모방해야 할 규범을 담는다.

꾸란: 알라의 말씀, 책이 되다

꾸란은 무슬림에게 '알라의 말씀' 그 자체인 최고의 경전이다. 초기에는 납작한 돌, 낙타 견갑골, 가죽 조각 등에 필사·구전되다 652년 제3대 칼리파 우스만이 결정판(무샤프)을 편찬했다. 114수라, 6,243절로 구성되며 누하, 이브라힘, 무사, 다우드, 술라이만, 유수프, 유누스, 일야스, 이사(예수) 등 성경 인물이 등장한다. 예수는 기적을 행한 대예언자이나 신의 아들이 아니며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았다고 본다. 최후의 심판에서는 선인은 낙원(후르 알 아인 등 향락 약속)으로, 악인은 지옥불로 간다. 꾸란은 인물 묘사를 금해 무함마드 초상화는 후대 비아랍권에서야 등장했다.

이슬람 율법(샤리아)

샤리아는 인간 행위를 5범주(허용, 권장, 의무, 혐오, 금지)로 분류한다. 결혼은 의무며 남성은 최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다. 간음 100대, 무고 80대 태형, 절도 손목 절단형 등이 규정되며, 돼지고기와 비도살 고기(피 안 뺀 고기)는 금식한다.

참고: 인터넷 자료 속 전승과 신화적 요소

일부 이슬람 자료에 따르면 예수 승천 후 600년경 인류가 신을 잊고 우상(나무, 바다, 해, 달)을 섬기며 타락(음주, 도박, 매장, 과부 화장 등)했을 때 알라가 무함마드를 보냈다고 한다. (개인적 메모: 무함마드 어머니가 과부로 화장당했을 가능성도 제기됨). 또한 알렉산드로스 대왕 탄생 설화처럼 무함마드 탄생 시 페르시아 궁전 진동, 수백 년 된 신전 불이 꺼지는 등 세계적 징조가 있었다는 전승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