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조차 자신의 일지에 이들을 기록했다. 다른 병사들이 지옥이라 불렀던 환경이 이들에게는 일상이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태양 나침반, 초시계, 그리고 전쟁 전 탐험가들이 남긴 지도뿐이었다. 고장 난 오일 팬은 통조림 캔으로 대체했고, 한가할 때면 차 밑에서 몸을 뒹굴었다.
1940년 6월, 랄프 알저 배그놀드 소령과 가이 레녹스 프렌더거스트 중위는 막 다가오는 아프리카 전쟁에서 처음에는 작은 역할이겠지만 실험 부대를 창설할 허가를 받아냈다. 두 사람은 전쟁 전 왕립지리학회의 후원으로 거의 10년간 '검은 대륙'을 탐사한 베테랑이었다. 특히 배그놀드는 포드 T 모델로 북아프리카를 종횡으로 횡단했는데, 이 경험은 이후 전쟁에서 값진 교훈이 되었다. 그는 태양 나침반, 차량을 모래에서 끌어내기 쉽게 해주는 강재 레일, 물 소비량을 줄여주는 응축기 등을 발명했고, 무엇보다 유목민들만 알던 우물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대부분의 특수부대와 마찬가지로 배그놀드가 원한 것은 물 부족과 장거리 사막 순찰의 고된 고통을 견디며, 끈질기고 독립적인 성격의 인간들이었다. 충혈된 눈, 그을린 피부, 벌레가 든 긴 수염, 그리고 어디에나 끼어드는 사막의 모래가 이들의 일상이 될 예정이었다. 그 대가로 그들은 진짜 '사막의 사람들'을 지휘관으로 맞이했고, 이는 당연히 병영식 생활, 의미 없는 침구 검열, 명령에 따른 기상과 취침 같은 형식과는 결별하는 것이었다. 1940년 7월 3일, 훗날 장거리 사막 정찰대(Long Range Desert Group, LRDG)로 알려지게 될 이 부대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이 반드시 감안해야 할 세력으로 공식적으로 자리 잡았다.
1942년 9월 '카라반 작전' 직전의 쉐보레 LRDG 차량들. 대공 방어용으로도 자주 사용된 쌍발 빅커스 K 기관총이 눈길을 끈다.
'유령'들의 일상
LRDG 순찰대의 작전 구역은 카이로부터 트리폴리까지 뻗어 있었으며, 그 범위는 1,600km × 1,900km에 달했다(거의 인도 크기!). 이 부대의 핵심 강점 중 하나는 사막을 빠르게 주파하는 능력이었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차량에서 창문과 지붕, 문을 떼어내 경량화를 꾀했다. 그 결과 차량 무게는 1.5톤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적재물은 오직 병사들과 보급품, 예비 부품뿐이었다. 물론 예비 부품은 상당 부분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금이 간 크랭크샤프트 하우징은 껌과 모래를 섞은 혼합물로 '메웠고', 오일 팬 자리에는 구멍을 잘 메운 통조림 캔이나 과일 통을 땜질해 끼워 넣곤 했다. 헬멧이나 모자보다는 케피예(아랍식 머리 스카프)나 울 모자를 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최고의, 아니 흔히 유일한 그늘은 차량 밑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저서 『SAS: 폐하의 코만도』에서 루이스는 이렇게 전한다.
"그냥 덥기만 한 게 아니야. 단순히 피곤한 것도 아니야. 온몸의 에너지가 새어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고, 뇌가 머리에서 튀어나오고 싶어 하는 거지. 저 저주받은 태양이 질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고 싶어진다(…) 11시에 시계를 본다. 한 시간쯤 뒤 다시 보면 11시 15분이다."
사막 깊숙이 들어서면 LRDG 병사들은 엄격한 물 배급 제도로 전환했다. 하루에 마실 수 있는 물은 단 몇 파인트였고, 병사 한 명당 총 배급량은 절대 1갤런을 넘지 않았다. 이 몫은 차량 라디에이터에 보충하는 데에도 자주 쓰였다. 이 물로 차를 끓이는 일은 드물었고, 씻는 일은 더욱 드물었다. 식사 후 설거지는 생명수인 물 대신 거친 모래로 닦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몇 주간의 순찰을 마친 그들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수염은 금세 LRDG 병사들의 상징이 되었다. 정찰 부대의 규칙은 결코 인도적이라 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이런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기도 했다.
사막 정찰대의 별난 짓?
1942년 8월, 로이드 오언 대위의 지휘 아래 LRDG 부대는 카이로를 출발해 최대급 비밀 작전의 집결지인 알쿠프라 오아시스로 향했다. 도시 경계를 지난 직후, 호송대의 차량 한 대가 갑자기 갈림길을 벗어나 쿠푸 대피라미드를 향해 달렸다. 카이사르나 나폴레옹의 군대처럼 오언의 병사들 역시 고대 문명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 그 방식은 로마 군단이나 프랑스군과는 조금 달랐다. 운전병이 거대한 무덤 주위를 첫 바퀴 돌기 시작하자 나머지 병사들도 신호 권총(이탈리아산 키마르 베라)을 꺼내 들고 알록달록한 탄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건물을 여러 바퀴 돌며 각양각색으로 조명해 주던 그들이었으나, 곧 지헌대에게 붙잡혀 해명을 요구받았다. 놀이가 중단된 데 분노한 듯한 운전병이 지헌대에게 해명을 했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오언과 부하들은 최소한 구치소행이었겠지만, LRDG의 행선지에 대해 간략하고 대강의 설명만 하자 지헌대는 순찰대를 풀어주었다. 1940년 여름부터 윈스턴 처칠은 영국군 내에 만들어진 각종 특수부대를 강력히 지원해 왔기 때문에 지헌대는 국가 장비를 이용해 최전선 근처에서 카우보이 파티를 벌인 LRDG 병사의 노골적인 군기 문란을 결국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다. 피라미드를 '장식'하려던 발상 자체가 사막 순찰대원이 매일 감당해야 했던 스트레스의 규모를 보여준다. 적기에게 발각될까 하는 두려움은 엄청난 수준의 아드레날린을 쌓아 올렸고, 그것은 언뜻 단순해 보이는 유희 속에서 분출구를 찾았던 것이다.
LRDG와 SAS의 '로맨스'
1941년 말, 카이로의 셰퍼드 호텔에서 SAS와 LRDG의 장교들이 만났다. 완전히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 결과는 흥미로운 협력으로 이어졌다. 두 부대의 가능성에 대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눈 장교들은 합동 임무를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1941년 12월 8일, 코만도와 사막 정찰대로 구성된 합동 부대가 카이로 서쪽 960km 지점의 잘로 오아시스를 출발해 타메트 마을을 향했다. 12월 14일 현지에 도착한 그들은 아무 의심 없이 매점에서 담소하며 즐기고 있는 이탈리아 조종사들을 발견했다. 매점 문이 부수어지고 토미건의 탄환 방열이 실내를 쓸면서, 근처 비행장에서는 비행기들이 하나둘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흘 동안 코만도들은 현지의 선술집과 비행장을 가장 거침없는 방식으로 유린하고, 비행기를 폭파시키고 이탈리아인들을 사살했다. LRDG와 SAS 합동 부대가 거둔 첫 번째 전과의 결과로, 추축군은 타메트에서 24대, 메르사브레가에서 30대, 아게다비아에서 37대의 비행기를 잃었고, 같은 해 크리스마스에는 타메트 비행장에서 생산 라인을 막 나온 신형기 27대가 또다시 폭파되었다.
순찰 중인 LRDG 트럭
배신의 대가
이후 6개월 동안 SAS의 창설자이자 지휘관인 데이비드 스털링의 병사들은 LRDG의 지원을 받아 북아프리카 연안 전역에서 적을 계속 괴롭혔다. 그러던 1942년 5월, SAS에 또 하나의 협력 제안이 들어왔다. 지휘부는 포위된 몰타로 17척의 보급선이 도달할 수 있도록 지중해의 추축군 항공 전력을 약화시킬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LRDG, SAS, 그리고 SIG(Special Interrogation Group, 특별심문부대)의 합동 부대가 데르나-마루바 지역의 여러 비행장에 잠입해야 했다. 작전의 핵심은 후자의 부대였다. SIG는 몇 달 전 엘가잘라의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허버트 벅 대위가 창설한 부대로, 탈취한 아프리카 군단 모자 덕분에 적진을 통과해 올 수 있었다. 벅의 병사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포로'로 위장한 SAS 코만도들을 선정된 비행장 구역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완벽해 보이는 이 계획은 미지수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SIG 요원들은 검문소의 6월 암호를 알지 못했다(5월 암호는 '피우메(fiume)'였지만, 더 꼼꼼해진 검열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또한 벅은 아프리카 군단 출신의 '전향' 요원 두 명(브룩너와 에스너)의 참여를 고집했다. 한편 롬멜의 암호 해독반은 몇 달 전 블랙 코드를 해독해 워싱턴으로 발송된, 연락장교가 북아프리카 전쟁에 대한 낙관을 드러낸 전문을 가로챈 데 이어, 데르나-마루바 지역 비행장 공격을 계획하는 사보타주 부대의 움직임까지 파악하게 된다. 그럼에도 스털링과 벅은 작전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6월 13일, 두 대의 트럭이 목표지점을 향해 출발했다. 데르나로 향하던 트럭에는 배신자 브룩너가 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위치를 적에게 계속 알리고 있었다. 비행장 앞 헌병소에서 200m 지점에 이르자 그는 차량 고장을 핑계로 차를 세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SIG와 SAS 요원들 중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오귀스탱 조르댕 중위뿐이었고, 그는 사막을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이들을 집으로 데려가기로 되어 있던 LRDG 팀을 만나야 했다. 그날 밤 남은 SAS 부대들이 적기 27대를 추가로 파괴했지만, 이것이 몰타에 대한 추축군의 공습을 막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것은 영국이 에르빈 롬멜에게 보낸 분명한 메시지였다. '정정당당한 전쟁'의 시대는 거의 끝나갔다. 이제 토브룩이 SAS, LRDG, SIG, SBS의 새로운 목표가 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