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자(Giza) 고원에 서 있는 세 대의 대피라미드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그래서 '모든 피라미드가 기자와 나일강 삼각주 근처에 건설되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 전제는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습니다.
기자 밖에도 널려 있는 피라미드들
이집트 전역에서 확인된 피라미드는 100곳이 넘으며, 상당수가 기자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피라미드 유적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카라(Saqqara): 이집트 최초의 석조 건축물인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고왕국 시대 내내 왕족과 귀족의 무덤이 집중된 거대한 네크로폴리스입니다.
- 다슈르(Dahshur): 스네이프루 왕이 건설한 굽은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피라미드 건축 기술이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 단계에 이른 과정을 보여줍니다.
- 아부시르(Abusir): 제5왕조 파라오들이 태양 신전과 함께 소규모 피라미드들을 세운 유적지입니다.
- 메이둠(Meidum): 계단식 피라미드가 진정한 각뿔대 피라미드로 발전하는 과도기 양상을 보여주는 스네이프루 왕의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이처럼 피라미드는 주로 카이로 남쪽의 나일강 서안을 따라 약 60km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기자는 그 북단에 위치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기자가 가장 유명한 이유
기자의 피라미드가 특히 유명한 것은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처럼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고 보존 상태가 좋으며, 스핑크스와 함께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유명해서 모든 피라미드가 거기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지, 실제 역사와는 다릅니다.
피라미드가 그 자리에 세워진 이유
고왕국 시대의 수도였던 멤피스(Memphis) 인근 일대에 피라미드가 집중된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왕권의 상징인 영묘를 수도에서 가까운 곳에 두어 관리와 의례가 용이했습니다. 둘째, 나일강을 통한 수운으로 투란(Tura)의 고급 석회암과 아스완의 화강암을 쉽게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나일 범람원 위쪽의 사막 가장자리는 농경지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지반이 확보되는 최적의 부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피라미드의 입지는 우연이 아니라 수도 위치, 물류, 지질 조건이 결합된 전략적 선택의 결과이며, 기자는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