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입양이 아니라 '유언장을 통한 입양'
훗날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는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는,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카이사르 생전에 정식으로 양자로 들어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따라 사후에 입양되는 형식으로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옥타비우스의 모친 쪽 외종조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일찍부터 이 조카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기원전 49년 최고 신관(Pontifex Maximus)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니게르가 사망하자, 카이사르는 옥타비우스를 자신의 최고 신관직 계승자로 내정하며 두터운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45년 9월, 카이사르가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공식화되었습니다. 이 유언장에서 옥타비우스는 처첩 쪽 친족인 루키우스 피나리우스와 가이우스 피나리우스 형제와 함께 상속인으로 명시되었으며, 이후 주요 상속인 자리까지 올라서게 됩니다.
수에토니우스가 전하는 선택의 이유
고대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하필 옥타비우스를 후계자로 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옥타비우스의 가문 배경입니다. 카이사르의 조카 딸 아티아의 아들로, 카이사르와 직접적인 혈연 관계에 있었다는 점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둘째는 젊은 나이에 드러난 군사적 재능과 업적입니다. 카이사르는 어린 옥타비우스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고 전해집니다.
셋째로는 개인적 감정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카이사르가 옥타비우스의 어머니 아티아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 역시 선택에 일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후에 확정된 상속
결국 카이사르가 원래 더 선호하던 다른 상속 후보들이 앞서 사망하면서, 옥타비우스는 유언장상 최대 수혜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이후 유언장이 공개되자, 그는 부재중 입양(in absentia)의 형식으로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법적 후계자가 되었고, 이것이 훗날 아우구스투스로서 로마 세계를 통치하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