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회의란?
베를린 회의는 독일 제국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가 제안한 회의로,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 점령하기 위해 개최한 국제 회의입니다.
회의에는 19세기 제국주의 열강 대부분이 참석했습니다. 미국, 러시아, 영국, 덴마크,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제국,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미국처럼 아프리카에 식민지가 없던 나라도 참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아프리카 영토 일부를 차지하거나 무역 조약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를린 회의의 배경

베를린 회의는 1884년 11월부터 1885년 2월까지 약 석 달간 독일에서 열렸습니다. 독일 제국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의장을 맡았으며, 당시 관례에 따라 모든 협상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이 회의는 콩고 분지와 니제르 강에서의 자유로운 통행과 무역을 보장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예제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목적은 아프리카 식민지를 둘러싸고 열강 사이에서 벌어지던 갈등을 해소하고, 정복한 영토를 세계 열강끼리 '원만하게' 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원자재가 풍부한 대륙이었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최대한 많은 영토를 확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결국 목표는 달성되었지만, 회의 이후에도 참가국들 사이에는 여러 갈등이 남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벨기에
레오폴 2세 국왕은 대륙 중앙의 외지고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자신의 몫으로 택했습니다. 그의 의도는 영국과 프랑스 같은 열강처럼 벨기에도 식민지를 보유한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벨기에령 콩고는 여러 나라의 식민지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고, 이는 훗날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vs 영국
프랑스와 영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역에서 식민지 패권을 놓고 격렬하게 경쟁했습니다. 그 결과 양국은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 최대한 많은 영토를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영국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강력한 해군 함대를 앞세워 협상 결과에 압박과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19세기 내내 부족 지도자들과 조약을 체결해 왔으며, 이를 근거로 삼아 아프리카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아프리카를 점령한 거의 모든 유럽 열강이 활용했습니다. 유럽인들은 특정 부족과 동맹을 맺고 그들의 적과 싸우도록 도우면서 전쟁을 조장했습니다.
베를린 회의의 결과
그 결과 아프리카 대륙은 베를린 회의 참가국들에게 다음과 같이 분할되었습니다.

- 영국: 식민지가 대륙 전체를 가로질러 북쪽의 이집트부터 남쪽의 남아프리카까지 이어졌습니다.
- 프랑스: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해안, 그리고 인도양의 여러 섬들을 점령했습니다.
- 포르투갈: 카보베르데, 상투메프린시페, 기니, 그리고 앙골라와 모잠비크 지역 등 기존 식민지를 유지했습니다.
- 스페인: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해안의 식민지를 계속 보유했습니다.
- 독일: 대서양 연안의 카메룬과 나미비아, 인도양 연안의 탄자니아를 획득했습니다.
- 이탈리아: 소말리아와 에리트레아를 침공했으며, 에티오피아 진출을 시도했다가 패배했습니다.
- 벨기에: 대륙 중앙부, 즉 콩고와 르완다에 해당하는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동시에 콩고 분지와 니제르 강에서의 무역 자유가 보장되었고, 노예제와 인신매매의 금지도 합의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외교적 승리와 1차 세계대전의 그림자
베를린 회의는 총리 비스마르크에게 큰 외교적 승리였습니다. 이 회의를 통해 독일 제국이 더 이상 무시될 수 없으며, 영국과 프랑스에 필적하는 강대국임을 입증했습니다.
그러나 이 회의는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아프리카 국경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치닫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두 진영 간의 대결 구도로 전개되었습니다.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가 연합한 동맹국(살국 동맹)과 프랑스·영국·러시아가 연합한 협상국(살국 협상)이 그 주인공입니다.
아프리카는 유럽 열강들의 연장선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이 대륙 역시 대전에 휘말렸으며, 현지 원주민들조차 각국 군대에 편입되어 전장에 동원되었습니다.
열강들이 새롭게 그려놓은 아프리카의 지도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 독립 운동이 잇달아 일어나며 식민 통치 시대의 막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