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역사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인물들은 누구였을까?

기원전 44년 3월 15일, 이른바 '이두스 마르티'로 불리는 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원로원 의사당에서 원로원 의원들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암살 음모에는 무려 60여 명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로마 원로원 의원으로, 카이사르 암살 음모의 실질적인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기원전 85년경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폭넓은 교육을 받은 뛰어난 웅변가였습니다. 갈리아 전쟁 당시에는 군 사령관으로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카이사르 사후 카시우스는 시리아로 피신하여 브루투스와 세력을 합쳤으나, 결국 기원전 42년 필리피 전투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연합군에게 패배했습니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카이사르의 친밀한 측근이었습니다. 기원전 85년경 저명한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덕망과 학식을 겸비한 인물로, 당대 가장 고결한 로마인 중 한 명으로 널리 존경받았습니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야망이 로마 공화국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판단하여 암살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카이사르 사후 그는 그리스로 피신하여 카시우스와 합류했지만, 기원전 42년 필리피 전투에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하며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알비누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알비누스는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먼 친척으로, 역시 로마 원로원 의원이었습니다. 기원전 85년경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카이사르의 절친이자 신뢰받는 부하 장군으로, 갈리아 전쟁에서 함께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카이사르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고, 암살 음모에 가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카이사르 사후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갈리아로 피신했으나, 기원전 4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 배신당해 살해당했습니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는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카이사르의 오랜 친구였습니다. 기원전 80년경 출생한 그는 갈리아 전쟁에서 카이사르 휘하의 군 사령관으로 복무했으며, 기원전 45년에는 집정관에까지 올랐습니다.

트레보니우스는 카이사르가 로마 공화국에 위협이 된다고 확신하며 음모에 동참했습니다. 카이사르 사후 그는 아시아 속주로 피신했으나, 기원전 43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에게 붙잡혀 살해되었습니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스카 롱구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스카 롱구스는 로마 원로원 의원으로, 암살 당일 카이사르에게 첫 번째 칼질을 한 인물로 전해집니다. 기원전 85년경 태어난 그는 갈리아 전쟁에서 군 사령관으로 복무했고, 기원전 44년에는 호민관을 지냈습니다.

카이사르의 권력 집중을 두려워한 나머지 음모에 가담한 그는, 카이사르 사후 동방으로 피신하여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진영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기원전 42년 필리피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루키우스 미누키우스 바실루스

루키우스 미누키우스 바실루스 역시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카이사르의 측근이었습니다. 기원전 80년경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갈리아 전쟁에서 군 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기원전 44년 호민관직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카이사르가 공화국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여 음모에 가담했고, 카이사르 사후 동방으로 피신하여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와 함께했습니다. 그 역시 기원전 42년 필리피 전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암살자들의 최후

흥미롭게도 카이사르를 죽인 이들 대부분은 '공화국을 구했다'는 명분과 달리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필리피 전투의 패배, 혹은 동맹의 배신 등으로 단기간 내에 대부분 목숨을 잃었으며, 이는 카이사르에 대한 로마 민중의 애정과 후계자들의 복수심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