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여러 여성들과 연인 관계를 맺었던 인물입니다. 로마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가이자 군사 지도자였던 그는 공적인 삶만큼이나 사생활 역시 매우 화려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세 번의 결혼 생활
카이사르는 평생 세 번 결혼했습니다. 첫 번째 아내는 귀족 출신의 코르넬리아(Cornelia)였고, 두 번째 아내는 폼페이아(Pompeia), 마지막 아내는 칼푸르니아(Calpurnia)였습니다.
특히 폼페이아와의 이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 여성만 참석하는 종교 의식 '보나 데아' 축제에 남자가 남장하고 잠입하는 스캔들이 일어나자, 카이사르는 실제 아내의 잘못이 없었음에도 이혼을 선택하며 "카이사르의 아내는 의심받는 것조차 용납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연인들
결혼 생활 외에도 카이사르에게는 수많은 애인과 정부(情婦)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다음 두 사람입니다.
세르빌리아 카에피오니스(Servilia Caepionis)
원로원 의원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어머니인 세르빌리아는 카이사르의 가장 오래된 애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수년간 지속되었으며, 카이사르는 그녀에게 값비싼 진주 등 고귀한 선물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와의 관계는 카이사르의 로맨스 중에서도 가장 극적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들 카이사리온(Caesarion)이 태어났으며,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로마로 불러들여 상당한 특권을 누리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끊이지 않았던 스캔들
고대 로마에서는 카이사르가 원로원 의원들의 아내들과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별명 중 하나였던 '모든 여자의 남편'이라는 표현은 그의 풍문만은 아닌 실제 행보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이처럼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위대한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동시에, 개인적인 삶에서도 로마 사회의 화제를 모으던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