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켄신, 다케다 신겐을 기습하다
1561년 9월, 가와나카지마(川中島)에서 벌어진 우에스기 군과 다케다 군의 제4차 전투. 잇키우치(一騎打ち, 일기토)에 관한 가장 널리 퍼진 이야기는 바로 이 전투에서 시작됩니다. 우에스기 켄신은 패색이 짙어졌다고 판단하자, 평생의 숙적을 이 자리에서 끝내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절박한 심경으로 그는 말을 몰아 다케다 군의 혼진(本陣, 본영)으로 곧장 돌진했습니다.
그곳에서 켄신이 마주한 것은 소게(床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는 다케다 신겐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신겐은 오직 군배(軍配, 철부채) 하나로 몸을 지킬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전해집니다.

켄신은 길이 3자(약 90cm)에 달하는 태도를 번쩍 들어 신겐의 머리를 내리쳤고, 신겐은 간신히 군배로 이 일격을 막아냈습니다. 이때 하타모토(旗本) 하라 오스미가 주군을 구하러 달려들어 창을 휘두르며 켄신에게 맹공을 퍼부었고, 갑옷 뒤편 어깨를 찌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켄신은 즉각 반격하여 칼로 오스미의 창을 튕겨냈습니다. 튕겨 나간 창은 큰 힘으로 말의 뒷다리를 강타했고, 놀란 말은 뒤일어서 진영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결국 켄신은 말에 실린 채 아군 진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더 많은 다케다 병사들이 현장으로 달려왔지만, 그때는 이미 켄신이 자기 진영에 도착한 뒤였습니다.
훗날 군배에서는 여덟 개의 베인 자국이 발견되었으며, 기록에 따르면 다케다 신겐은 이 공격으로 팔에 두 곳의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지만, 다른 고립된 일화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의문점과 이형(異形)의 전승이 존재합니다.
사료 속의 잇키우치
『다케다 산다이 군키(武田三代記)』에는 조금 다른 변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하라 오스미가 모치야리(持槍)로 켄신을 공격해 말에서 떨어뜨렸으나,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 한 사람이 급히 달려와 자신의 말을 내주었고, 켄신은 그 말을 타고 사이 강(千曲川) 방면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에스기케 고넨푸(上杉家御年譜)』에서는 또 다른 버전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켄신의 하타모토인 아라카와 나가자네가 칼을 들어 올린 채 다케다 혼진으로 돌진했습니다. 신겐은 자신의 검에 손을 댈 겨를도 없어 군배를 휘둘러 공격자를 막아섰고, 이윽고 신겐 측 하타모토 무사들이 달려와 공격자를 물리쳤다고 합니다. 나가자네는 그날로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지지만, 신겐 습격 도중에 죽었는지 이후 전투에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잇키우치 일화를 둘러싼 여러 사료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 1536~1612)가 1561년 10월 5일자로 쓴 편지입니다. 간토 지방과 인연이 깊었던 그는 켄신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루노부(晴信, 신겐의 본명)를 상대로 한 승리를 축하하는 한편, 전투에서 직접 칼을 들고 싸웠다는 사실을 높이 칭찬했습니다. 불행히도 누구와 싸웠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로 이 모호함이, 훗날 그 전투가 두 장수 간의 개인 결투였다는 이야기와 전설로 번지는 씨앗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키히사가 이 편지를 쓴 계기는 아마도 그보다 앞서 켄신에게 받은 편지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에는 동맹국, 친우, 행정 지도자들에게 여러 사안을 알리는 관행이 있었고, 이 정도의 대승이라면 반드시 보고해야 할 중대 사안이었을 것입니다.
사키히사는 편지에서 켄신의 개인적 용맹함과 위대한 승리 덕분에 그 이름이 온 나라에 알려지리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오다와라의 호조 우지야스가 마쓰야마 성을 공격하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간토 지방으로 와 줄 것을 요청합니다.
잇키우치에 대한 현대적 재검토
이 잇키우치 일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에 기술되었고, 19세기 우키요에(浮世絵)를 비롯한 수많은 판화와 예술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시각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동시대 사료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일본 역사학자들은 이 일화의 진실성에 회의적인 입장이며,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여기서 시대착오적인 딜레마도 제기됩니다. 당시 무인이 출가(入道)하면 머리를 깎고 승려의 두건을 썼는데, 이 두건은 종종 투구 대신 쓰이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켄신이 1561년 무렵부터 이미 흰 승려 두건을 쓴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는 1570년에야 비로소 출가했기 때문입니다(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출가 후 사용한 '켄신'이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도 1570년 12월 13일자 편지입니다.
어쨌든 잇키우치 일화가 아예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신겐의 진영을 습격한 것은 켄신 본인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즉 카게무샤(影武者, 그림자 무사)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현재의 유력한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