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비극의 주인공이자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남! 난릉왕 '고장공'의 짧지만 화려했던 일대기

비극의 주인공이자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남! 난릉왕  고장공 의 짧지만 화려했던 일대기

중국 위진남북조시대는 훌륭한 군주는 드물었지만, 뛰어난 무장들은 수없이 배출된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고장공(高長恭)은 바로 그 뛰어난 군사 지휘관 중 한 사람입니다.

일본 아악(雅樂) 곡 「난릉왕(蘭陵王)」의 주인공이자, 미시마 유키오가 남긴 마지막 단편소설 『난릉왕』의 원형이 된 인물. 그 유명한 장군의 생애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참고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속에 고장공 본인은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북제 황실 출신, 고장공

비극의 주인공이자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남! 난릉왕  고장공 의 짧지만 화려했던 일대기

고장공의 할아버지는 북위의 중신 고훙(高歡)이었고, 아버지 고징(高澄)은 북위에서 분열된 동위(東魏)의 중신이었습니다.

중국 전통 문화에서 자식의 지위는 어머니의 신분에 크게 좌우되었는데, 고장공은 어머니의 신분이 낮았던 탓에 형제들에 비해 큰 우대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진남북조시대는 암살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시대였고, 고장공의 아버지 고징 역시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분노한 삼촌 고양(高洋)은 동위의 황제에게 선양(禪讓),즉 제위를 넘겨줄 것을 강요했고, 스스로 나라 이름을 북제(北齊)라 정하며 새 왕조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고장공은 난릉왕(蘭陵王)의 작위를 받았고, 북방의 돌궐과 서쪽의 침입에 맞서 싸우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비극의 주인공이자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남! 난릉왕  고장공 의 짧지만 화려했던 일대기

돌궐을 탁월하게 격퇴한 고장공은 이어 북주(北周)와의 전쟁에도 계속 투입되었습니다.

북주가 10만 대군으로 북제의 요충지 뤄양(낙양)을 포위했을 때, 고장공은 즉시 구원에 나섰습니다.

도중에 방해를 받았음에도 다른 장수들과 능숙하게 협공하여 적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고, 이윽고 뤄양 성벽 아래에 당도했습니다.

그리고 뤄양 근교에 도착한 고장공은 투구를 벗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용모가 너무나 빼어나서 뤄양에 있던 북제군 병사들이 고장공이 도착했음을 알아보았고, 사기가 크게 진작된 북제군은 그대로 북주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개그 같은 일화지만…

믿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리더라도, 실제로 이 뤄양 전투에서 북제가 북주를 격퇴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는 점점 부풀려져 고장공이 얼굴에 흠집 나는 것이 싫어 철가면을 썼다는 설, 여자 같은 용모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썼다는 설 등이 생겨났습니다. 당나라 시대에는 고장공의 미모가 너무 눈부셔 병사들이 얼굴을 가려야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571년, 대장군이 된 고장공은 다시 침공해 온 북주군을 격파하고 적장마저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고장공의 비극적 최후

고장공의 인기를 두려워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적국 북주…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동맹이어야 할 북제의 황제, 고위(高緯)였습니다.

고위는 신하들의 아첨에 넘어가 충신들을 파면하고, 영향력 있는 무장들을 하나둘 숙청한, 중국 역사상 최악의 폭군 반열에 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

고위는 고장공이 자신의 제위를 빼앗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고장공은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집에 틀어밉혀 신중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는 고장공에게 독배를 보냈습니다.

이제와서 자신이 어떤 운명에 놓였는지 깨달은 고장공은 결국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32세였습니다.

고장공을 잃은 북제는 급격히 쇠락하여 불과 4년 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역사서들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난릉왕이 살아 있었다면 북제는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고장공에 대한 평가

고장공은 '온화하고 아름답다'고 표현될 만큼 뛰어난 외모와 맑은 목소리를 지녔으며, 과일을 하사받으면 조금이라도 부하들에게 나누어주고, 작은 일이라도 직접 손수 처리하는 등 인품 면에서 훌륭한 일화가 많이 전해집니다.

  • 과거 절도 혐의로 파면되었던 부하에게는 가벼운 징계만 내렸고, 이후 군에 복무하며 자신의 노여움을 두려워하며 떨던 그를 다시 불러 안심시켜주었다.
  •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단독으로 귀환한 부하도 결코 처벌하지 않았다.
  • 전공을 기려 미녀 20명을 하사받았을 때는 한 명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사양했다.

잘생기고, 부하들을 아끼며, 공정하고 용감했던 고장공은 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만약 고장공이 권력을 잡고 황제가 되었다면 북제는 계속 이어졌을 것이고,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고장공은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올곧은 인물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좀 더 제대로 된 군주 밑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인물입니다.

어느 쪽이든, 고장공은 위진남북조시대를 대표하는 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