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사이메이 천황(齊明天皇)과 연관된 아사쿠라 도치바나노 히로니와 궁(朝倉橘広庭宮)을 다루면서 '오니(鬼)'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번에는 그 '오니'가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깊이 파헤쳐 보려 한다.
일본사의 본류에서 다소 벗어난 주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최초로 전해진 '오니'의 뉘앙스를 이해하면 당시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니의 어원과 기원
오니의 어원은 '오누(隠ぬ)', 즉 '숨겨진 존재, 경멸받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니'라는 호칭 자체는 헤이안 시대 말기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오니는 '사람의 원혼이나 망령'을 가리키는 중국 한자어로, 불교와 함께 6세기 후반 일본에 유입되었다. 다만 일본에는 이미 '오니'와 흡사한 존재가 있었다. 신(神)과 한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인 '모노(物)'이며, 중국에서 건너온 '오니' 개념은 '불교'와 밀접하게 결합하며 자리 잡았다고 생각된다.
오니에 관해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713년 편찬이 명령되어 733년에 완성된 『출운국 풍토기(出雲国風土記)』와,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日本書紀)』로 꼽힌다.
『출운국 풍토기』에 나타난 오니
『출운국 풍토기』에 등장하는 아요향(阿用郷)의 오니는 사람을 잡아먹는 존재로서, 확실하게 '오니'라 부를 수 있는 최초의 묘사로 평가된다. 이 오니는 대장장이 일을 하며 불길을 계속 들여다본 탓에 한쪽 눈을 잃은 부족의 육체적 특징을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출운 지방과 비교적 가까운 곳의 오니 전설로는 오카야마현 기노조(鬼ノ城)에 얽힌 '우라 전설'이 있다. 모모타로 설화의 모티프가 된 것으로 유명한데, 우라 역시 '제철 기술'을 가져온 '도래인'이라고 전해진다. 두 이야기 사이에는 이런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출운이나 오카야마 지방에서 전승되며 후세에 남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기노조는 백강 전투(663년) 이후 기타큐슈에서 세토 내해 연안, 기나이에 이르는 국방 시설군 중 하나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한편 이 성의 오니를 퇴치한 인물은 천황의 황자인 기비츠히코 노 미코토(吉備津彦命)로 전해진다. 참고로 제2대 스진 천황부터 제9대 가이카 천황까지 8대는 실재 여부조차 논란이 되는 '결사 8대(欠史八代)'로 불리는데, 기비츠히코가 이 시기의 인물이라는 점이 그의 실존 여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일본서기』에 나타난 오니
『일본서기』 긴메이 천황 5년(544년) 항목에는 "그 섬의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니, 또한 오니다. (가까이하지 말라)"라는 뜻의 기록과 함께, "사람이 잊고 말하기를, 읍(邑)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오니에게 홀렸다"는 식의 기술이 보인다.
* '읍(邑)'이라는 말에는 '무라(村)', '구니(国)', '미야코(都)' 같은 독음이 있다. 고대 중국 상나라의 제도에서 유래한 '읍제 국가'라는 용어가 있듯이, 여기서도 '마을'이나 '나라' 같은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긴메이 천황 시대의 '오니'는 문화와 외모가 다른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니가타현 사도섬 북부의 미나베 곶(岬)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미시하세(粛慎, 퉁구스계 민족?), 즉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거주하던 민족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또 하나의 예로, 『일본서기』의 고교쿠 천황(皇極天皇) 대 기록은 외모보다는 '오니의 불'과 '역병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타타리(祟り, 원령의 저주)'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묘사다.
오니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무엇이 오니라고 불렸는가'에 대해서는 바바 아키코(馬場あき子)의 저서 『오니의 연구(鬼の研究)』를 참고할 만하다. 그녀는 오니를 ① 신에 가까운 오니, ② 악마적인 오니, ③ 변화담(変化譚) 계통의 오니, ④ 인간 오니, ⑤ 원령·망령 계통의 오니로 분류했다.
이 분류에 따르면 『출운국 풍토기』와 『일본서기』 긴메이 천황 대에 나오는 오니는 (4) '인간 오니' 계통에 포함되고, 사이메이 천황 대의 기술은 (2) '악마적 오니' 혹은 변화담 계통의 에너지에 해당하는 듯하다. 종합적으로 보면 (5)의 영향력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두 문헌에 기록된 '오니'와 그 분류를 살펴보면, 낯선 자에 대한 두려움과 원한(怨恨)…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감정이 그 바탕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도(神道)의 오니에서는 '신'에 가까운 '오니'의 모습이 엿보이며, 오니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