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나라 시대 세금 이야기 – 조·용·조(租庸調)와 백성들의 무거운 부담

지금도 그렇듯, 나라(奈良) 시대에도 백성들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이호 율령(大寶律令) 제정 이후 백성들에게 부과된 세금 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조용조(租庸調)란 무엇인가?

율령 국가가 된 일본에서는 약 25명 정도로 구성된 '호(戸)'라는 행정 단위가 있었고, 호적과 계장(計帳)에는 이 호 단위로 주민이 등록되었습니다. 호적에 등록된 농민들은 구분전(口分田)을 분배받는 동시에 각종 세금과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호(戸) 다섯 개가 모이면 '오호(五保)'라 불리는 집단이 되어 서로 연대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런 연대 책임 제도를 만든 이유는 당연히 백성들이 도망쳐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용조의 기본 구조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租): 구분전에서 거둔 벼 수확량의 약 3%를 쌀로 납부
  • 용(庸): 1년에 10일분의 노동력 제공 의무를 천(布)으로 대신 납부
  • 조(調): 지역 특산물(천·실·해산물 등)을 납부

왜 수도와 기나이만 면제되었을까?

조용조의 기본적인 내용은 위와 같지만, 왜 하필 수도(京)와 기나이(畿内) 지역만 면제되었는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헤이조쿄(平城京)는 천도하기 전에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헤이조쿄가 건설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이 대규모 건설 현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헤이조쿄 같은 광대한 토목 공사와 사찰·신사 건축은 그만큼 고된 노동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다른 부역 의무가 면제되었습니다. 708년에는 이러한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쌀과 천이 지급된다고 보장받았는데, 이는 그만큼 노동이 가혹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역·사정(仕丁)·출거(出挙)에 대해

그 외에도 병역, 사정, 출거 같은 용어가 자주 등장하므로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병역(兵役): 성인 남성 3~4명 중 1명 비율로 징집되어 각국(令制国)의 군단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일부는 위사(衛士, 궁궐 경비) 또는 방인(防人, 규슈 해안 경비)으로 발령되기도 했습니다.
  • 사정(仕丁): 중앙 관청, 황실, 귀족 가문에서 잡일을 담당했으며, 리(里) 또는 정(町)이라 불리는 50호 단위마다 2명씩 선발되었습니다.
  • 출거(出挙): 초봄에 씨앗처럼 쌀을 빌려주고, 가을 수확철에 이자를 붙여 거두는 제도였습니다. 관이 실시하는 것은 공출거(公出挙), 민간이 실시하는 것은 사출거(私出挙)라고 불렀습니다.

이 밖에도 의창(義倉)이라 하여, 재해에 대비해 곡식을 저장할 목적으로 곡물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보관 중 부패를 막기 위해 헐값에 팔거나 빌려주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세금 부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당시의 세금 부담은 상당히 무거웠습니다. 특히 성인 남성의 경우 군인으로 징집될 뿐만 아니라, 조·용·조를 직접 수도까지 운반할 의무까지 떠안아야 했으므로 부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호적상의 남녀 성비는 크게 치우쳐 있었습니다. 남자로 등록되면 세금 부담에 짓눌리기 때문에, 일부러 여자로 신고한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처럼 과중했던 조·용·조 등의 세금 부담은 훗날 여러 상황 속에서 그 폐단을 서서히 드러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