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오다 노부나가 포위망] 반노부나가 세력이 만든 제2기 포위망, 1572~1575

제1차 노부나가 포위망은 아자이·아사쿠라 씨와의 화친과 엔랴쿠지(延曆寺) 소각으로 일단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고난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노부나가 세력은 여전히 강성했고, 대부분은 노부나가를 타도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주도한 노부나가 포위망

노부나가에게 불만을 품은 인물은 바로 제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였습니다. 요시아키는 노부나가의 지원으로 제15대 쇼군에 올랐지만, 막부의 실권이 노부나가에게 넘어간 현실에 깊은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요시아키의 반노부나가 세력 규합 시도였습니다.

요시아키의 움직임에 호응한 이는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継)였고, 그의 가신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 역시 여기에 가담했습니다.

1572년, 미요시 요시츠구와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노부나가에 반기를 든 가와치의 하타케야마 아키타카(畠山昭高)를 공격합니다. 또한 요시츠구는 자신의 누이동생을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정실로 들여보내며, 노부나가를 대신해 스스로 막부를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노부나가는 사쿠마 노부모리와 시바타 카츠이에에게 병사 2만을 맡겨 가와치와 야마토 방면, 즉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거점으로 진격시킵니다.

한편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노부나가는 쇼군 요시아키가 보낸 불평의 글을 이미 문제 삼은 바 있습니다. 노부나가는 미요시·마츠나가의 이번 배반 행위가 요시아키의 사주에 따른 것임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케다 신겐의 상락(上洛) 작전

더 나아가 요시아키는 쇼군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카이의 다케다 신겐까지 포위망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서신을 받은 신겐은 즉시 병사 2만 5천을 이끌고 도토미 침공에 나섰고, 노부나가의 동맹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대파합니다.

다케다 신겐과 오다 노부나가는 이전부터 동맹 관계였습니다. 동맹국인 도쿠가와를 공격한 것은 사실상 동맹 파기나 다름없습니다. 노부나가는 우에스기 겐신에게 보낸 서신에서 신겐의 이런 배신에 분노를 토로했습니다.

"이 원한을 결코 잊지 말라. 동맹국인 도쿠가와 영지를 침범한 신겐을 질책하고, 장래에 다케다 씨와 우호를 맺지 말라."

라고 적혀 있다고 전해집니다.

신겐이 도쿠가와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은 요시아키는 마침내 노부나가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역합니다. 노부나가를 완전히 타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결과, 반노부나가 세력의 구도는 다음과 같이 형성되었습니다.

  • 교토의 아시카가 요시아키
  • 카이의 다케다 신겐
  • 에치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
  • 키타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
  • 가와치의 미요시 요시츠구
  • 야마토의 마츠나가 히사히데
  • 이세의 잇코잇키

다케다 신겐의 죽음으로 붕괴된 노부나가 포위망

노부나가는 이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공개적으로 반역한 것은 노부나가에게 큰 타격이었습니다.

노부나가 권력의 기반이 바로 무로마치 막부였기 때문입니다.

요시아키를 보호하는 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던 만큼, 그와 결별하는 순간 노부나가의 정당성(大義名分)은 사라집니다. 오히려 이 결별로 인해 노부나가 토벌의 명분이 반노부나가 세력 측에 생겨나는 역효과까지 낳았습니다.

그러나 요시아키의 계략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573년, 카이의 다케다 신겐이 병사한 것입니다.

최대의 위협이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요시아키 자신이 거병합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이 일련의 우지 전투에서 쇼군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하는 데 성공하고, 그 결과 무로마치 막부는 사실상 멸망하게 됩니다.

요시아키의 추방은 반노부나가 세력에 큰 동요를 일으켰습니다. 이를 놓치지 않은 노부나가는 곧바로 아자이 나가마사를 공격해 오미의 오다니 성을 포위합니다. 나가마사는 즉시 아사쿠라 씨에 원군을 요청했지만, 노부나가는 오미로 군을 돌린 아사쿠라 군을 기습하여 아사쿠라 요시카게를 격파하고 에치젠 이치조다니 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노부나가는 아자이 나가마사가 농성한 오다니 성을 공략하며 아자이 씨 멸망을 완수합니다.

또한 노부나가는 사쿠마 노부모리에게 명하여 미요시 요시츠구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요시츠구는 끝내 자결에 몰렸고, 노부나가는 미요시 씨의 당주를 뿌리 뽑는 데 성공합니다. 아울러 그의 가신이던 야마토의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공격한 노부나가는 항복 권고를 받아들인 히사히데가 다몬 성(多聞山城)을 열도록 만들었습니다.

기나이를 일단 안정시킨 노부나가는 1574년 대군 7만을 이끌고 이세의 잇코잇키를 토벽했으며, 1575년에는 남은 미요시 씨 잔당을 항복시켜 가신으로 예속시켰습니다.

1575년, 신겐 사후 가독을 이은 다케다 카츠요리가 나가시노 성을 포위하자, 노부나가는 이를 구원하기 위해 도쿠가와 군과 함께 미카와로 진군합니다. 그리고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 카츠요리를 대파하는 데 성공하며 최대의 위협이었던 다케다 씨를 사실상 제거합니다.

이로써 오랫동안 노부나가를 괴롭혔던 아사쿠라·아자이·다케다가 차례로 무너지면서, 제2기 노부나가 포위망은 완전히 붕괴됩니다. 이후 제3기 포위망에서는 혼간지(本願寺)가 중심 역할을 하며 노부나가를 다시금 괴롭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