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초상화가 어느새 바뀌었다!?

역사 시간을 거쳐온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본 적 있을 그 초상화입니다. 검은 말에 올라탄 무사의 모습으로, 무로마치 막부의 초대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말 위의 인물은 무사다운 기개가 넘치지만, 쇼군이라는 위치 덕분에 강한 인상을 주는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초상화의 주인공은 고노 모로나오였다!?

이 초상화가 다카우지라는 학설은 1919년 역사학자 구로이타 가쓰미(黒板勝美)가 논문에서 소개하면서 정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1968년 고문서학자 하기노 산시치히코(萩野三七彦)가 "이 인물은 다카우지가 아니다"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학계가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초상화에 적힌 화압(花押)은 2대 쇼군 요시아키라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화압이란 당시 무사들이 문서에 남기던 독특한 서명 기호로, 당시 상식적으로 아들이 아버지의 그림에 화압을 남기는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2. 칼과 마구에 새겨진 문장이 아시카가 가문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문장은 두 개의 고리가 교차한 '링 문장(輪違い)'으로, 아시카가 가문이 아닌 가신인 고 씨(高氏) 가문의 문장으로 여겨집니다.

3. 초상화 속 인물의 차림새가 쇼군답지 않다는 점입니다. 인물은 투구와 갑옷을 갖추지 않았고, 당대 유행 스타일로 등에는 꺾인 화살을 지녔으며 칼도 차지 않았습니다. 쇼군의 초상화로는 명백히 어색한 구도입니다.

이 세 가지 근거로 인해 이 초상화는 다카우지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초상화 전체 그림에서 별표로 표시된 부분이 바로 화압인데, 다카우지의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요시아키라의 화압입니다.

그렇다면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집사(執事)였던 고노 모로나오(高師直), 혹은 그의 아들 모로아키라(師詮)로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이 그림은 고 씨 가문이 막부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린 것으로, 쇼군 요시아키라가 그 충성을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초상화 최상단에 자신의 화압을 적었다고 추정됩니다.

이 초상화는 2000년경까지 역사 교과서에 실렸지만, 앞서 언급한 학설이 등장한 이후 다카우지의 초상으로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기마무인상(騎馬武者像)'으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진짜 아시카가 다카우지 초상화로 보이는 작품 발견!!

2017년경 신문 보도에 따르면, 다카우지 사망 직후에 그려진 초상화의 모사본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역사적인 발견은 [아시카가 다카우지 초상]이라는 표제 아래, 예복을 갖춰 입고 앉아 있는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위에는 수십 줄에 달하는 인물의 전기(傳記) 텍스트가 적혀 있었습니다. 다카우지를 상징하는 조주지(長寿寺)가 언급되어 있고, 일본 66개국에 사찰과 탑을 세웠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카우지가 전국에 안국사(安国寺)와 리쇼토(利生塔)를 건립한 것으로 잘 알려진 업적과 일치하기 때문에, 다카우지의 초상으로 판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2대 쇼군 요시아키라가 교토의 히가시이와조지에 봉안한 목조 아시카가 다카우지 좌상과 비교했을 때, 큰 코와 처진 눈매라는 특징이 매우 흡사합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발견된 초상화가 다카우지의 초상임이 분명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직접 나란히 놓고 보면 확실히 닮았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과연 어떠실까요?

역사는 연구가 진행될수록 우리가 배워 온 내용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최근에 구입한 역사서에는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새로운 초상화가 실려 있었습니다.

현재 역사 교과서에 어떻게 실리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지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의 교과서 속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초상화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