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조몬 문화와 야요이 문화가 겹친 시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조몬 토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조몬 시대는 약 1만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초기(草創期), 조기(早期), 전기(前期), 중기(中期), 후기(後期), 만기(晩期)의 6개 시기로 구분됩니다.

그 이전의 구석기 시대는 마지막 빙하기와 시기가 겹칩니다.

조기~전기: 조몬 문화의 시작과 확산

약 15,000년 전부터 13,000년 전 사이, 남부 규슈(九州) 지역에 취락, 즉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2,000년 전 무렵에는 조몬 시대 특유의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고, 9,500년 전에는 정착 촌락이 등장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현상은 점차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마을의 규모와 인구는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였습니다. 언뜻 남쪽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이는 조몬 문화였지만, 실제로는 동일본에서 규모가 커지고 서일본에서는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중기~후기: 기후 변화와 문화의 부흥

4,000년 전 무렵의 중기에 이르러 지구가 한랭화되면서 꾸준히 증가해 오던 인구가 감소합니다.

취락의 규모도 축소되었으며, 특히 그 영향이 컸던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두드러졌습니다. 이후 따뜻한 기후가 다시 찾아오면서 후기 무렵부터는 서일본을 중심으로 부흥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야요이 문화의 유입과 두 문화의 공존

이 무렵부터 대륙에서 건너온 이주민들, 즉 야요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일본은 점차 야요이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미 전기 단계에서 일본 열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산지를 특정할 수 있는 흑요석과 적색 옥 같은 광물들이 홋카이도, 오키나와, 한반도 등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 출토된 청동검과 돌도끼가 동해(일본해) 북동부 연안 지역에서도 확인되어, 상상 이상으로 광범위한 교역망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일본의 벼농사 문화는 야요이 사람들이 전래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매우 이른 단계부터 광역 교류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조몬 문화와 야요이 문화는 예상보다 이른 시기부터 병행적으로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학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의 벼 재배는 씨앗을 땅에 직접 뿌리는 직파 방식, 즉 밭벼농사(육도 재배)가 주류였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개 시설을 갖춘 논에서 이루어지는 벼농사(수도 재배)는 후기~만기에 이르러 많은 야요이 사람들이 서일본으로 유입되면서 등장하게 됩니다.

동일본의 생활상: 조몬과 야요이의 공통점

한편 동일본에서는 도토리와 호두 같은 작물 재배가 이루어졌고, 해안 지역과 어업에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었다는 사실도 고고학 조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주로 수렵 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조몬 사람들의 생활이 실제로는 야요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상당 부분 겹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조몬인과 야요이인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차이를 보입니다. 하지만 대륙 문화를 가져온 야요이인들이 곧바로 이후 모든 일본 문화의 기반이 된 것은 아닙니다. 야요이인의 도래 이전에 이미 많은 문화 요소가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조몬 문화를 계승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은 지역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홋카이도와 오키나와가 그렇습니다.

새로운 발견의 배경과 앞으로의 과제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진 데에는 주로 고도경제성장기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고고학 유적이 발굴되고, 이들을 조사하고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계기였습니다. 분석 기술의 발전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의 통설은 야요이인들이 대륙에서 건너와 벼농사를 전래하면서 야요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연구 성과에 따라 일본 선사시대에 대한 역사 인식이 조금씩 달라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