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고대 일본은 왜 수도를 반복적으로 이전했을까?

7세기 말 후지와라쿄(藤原京)가 등장하기 전까지, 고대 일본에서는 천황의 세대가 바뀔 때마다 궁을 옮기는 '천조천궁(踐祚遷宮)'이라는 관습이 있었다. 비슷한 개념으로 '수도 이전'이 있지만, 그렇다면 '궁(宮)'과 '도읍(京)'은 어떻게 다를까?

궁전 이동과 수도 이전은 어떻게 다른가

일본어에서 궁전을 뜻하는 '미야(宮)'는 건물을 의미하는 '야(屋)'에 존칭인 '미(御)'가 결합된 말로, 고대 일본에서는 '훌륭한 건물'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한편 '여기', '저기'처럼 장소를 나타낼 때 쓰이는 어미에서 파생된 '미야코(都)'는 문자 그대로 '훌륭한 건물이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즉, 천조천궁은 '훌륭한 건물(궁전) 자체를 옮기는 것'이며, 수도 이전은 '훌륭한 건물이 서 있는 땅을 통째로 옮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스카 시대 이후에는 천황의 궁전이 세워진 자리를 따라 정부 기능과 사실상의 도시가 함께 이동했기 때문에, 궁전이 옮겨지면 도시 전체가 따라 움직이는 '수도 이전'이 되었던 것이다.

아스카쿄에서 후지와라쿄로

스이코 여제(推古天皇)가 아스카에서 즉위한 이후, 아스카 시대의 수도 이전은 대부분 같은 아스카 지역 내에서의 이동이거나, 인근 마을('경') 사이를 오가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694년, 지토 여제(持統天皇)는 율령제를 한층 더 추진하기 위해 중국식 도성 양식을 본떠 새로운 도읍을 축조하고 수도를 옮겼다. 이곳이 바로 후지와라쿄(藤原京)이다.

현대적 감각으로 수도 이전이라 하면 도쿄에서 오사카로 옮기는 듯한 대규모 이동을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로 아스카쿄와 후지와라쿄의 직선 거리는 약 5km에 불과했다. 도시의 규모도 한 변이 5~6km 정도로, 의외로 컴팩트한 도시였던 셈이다.

또한 당시 야마토 지방에는 남북으로 병렬로 뻗은 상츠도(上ツ道)·나카츠도(中ツ道)·시모츠도(下ツ道)라는 세 개의 대로가 있었고, 동서 방향으로는 요코오지(横大路)와 기타요코오지(北横大路)도 정비되어 있었다. 후지와라쿄에서 보면 헤이조쿄(平城京)는 이 남북 대로를 따라 약 20km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헤이조쿄에서 오사카만을 마주한 해운의 요충지 나니와쿄(難波京)까지는 거의 직선에 가까운 도로가 정비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건물을 해체해 옮기는 '이전' 방식

수도를 옮길 때 당시 사람들은 새터에서 궁전을 처음부터 새로 짓는 대신, 기존에 쓰던 궁전을 해체해 운반한 뒤 다시 조립하는 '전축(転築)' 방식을 활용했다. 아마도 그 영향으로 이전 기간이 뜻밖으로 짧았고, 몇 달 안에 이전을 끝낸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옮기기 쉬운 지형과 교통망이 갖춰져 있었다는 점은, 수도 이전을 실행하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나가오카쿄로의 초고속 이전

나가오카쿄(長岡京)는 기즈강과 요도강의 합류점 근처에 위치하고 가쓰라강을 마주하고 있어 수운 교통이 매우 발달한 땅이었다. 나가오카쿄 이전에서는 6월에 담당 인원이 확정되고, 무려 31만 명의 노동력을 동원해 같은 해 12월 안에 내리(内裏,천황의 처소)와 다이고쿠덴(大極殿)이 완공되어 설날 조하 의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물론 헤이조쿄에서 해체된 건물들이 그대로 나가오카쿄로 옮겨졌다.

그러나 나가오카쿄는 겨우 10년 만에 버려졌고, 794년 약 10km 떨어진 헤이안쿄(平安京)로 다시 이전하게 된다. 수륙 교통의 편리함이 그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수도 이전이 반복될 수 있었던 배경

역사를 돌아보면 고대 일본에서는 수도 이전이 유난히 잦았다.

  • 아스카 시대에는 천황이 바뀔 때마다 천조천궁이 거행되었다.
  • 율령 국가가 성립하면서 넓은 관청 구역과 관리들의 주거 공간이 필요해졌고,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이는 도시째로 옮기는 '수도 이전'으로 발전했다.
  • 권력 다툼, 재해, 치수 사업의 실패 등이 백성들의 생명을 위협했고, 때로는 저주('타타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도 대대적인 이전이 단행되었다.

그리고 이토록 많은 수도 이전이 가능했던 데에는, '실행하기 쉬운 환경'이 이미 갖춰져 있었다는 점이 큰 몫을 했다. 평탄한 분지 지형, 잘 닦인 대로망, 발달한 수운, 그리고 해체해 옮길 수 있는 목조 건축 기술까지 — 이러한 조건들이 고대 일본의 잦은 수도 이전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