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에도 808정(八百八町)은 잠시뿐? 인구 100만 도시 에도의 숨겨진 진실

에도 시대, 막부의 수도였던 에도는 인구 100만 명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당시 에도의 정확한 인구 수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과연 에도의 인구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을까요?

에도의 인구 분포

에도의 인구는 무사(사무라이), 정인(町人, 상공업자), 신사·사찰 소속 사람들로 크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정인과 신사·사찰 관계자는 제8대 쇼군 요시무네 때부터 6년마다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기 때문에 통계가 남아 있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에도의 인구는 약 50만 명 정도로 집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100만 인구의 나머지 절반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나머지 인구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무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타모토와 고케닌만으로 50만 명에 이르기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에도가 세계적으로 봐도 특별한 도시였다는 증거이며, 그 배경에는 산킨코타이(參勤交代) 제도가 있었습니다.

각 번의 다이묘는 처자식을 에도에 머물게 하고, 1년 걸러 에도와 영지를 오가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에도에는 다이묘별로 상저(上屋敷)·하저(下屋敷) 등 대규모 번 저택이 들어섰고, 수많은 번주와 그 가족들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무사들과 하인들이 나머지 50만~60만의 인구를 형성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안타깝게도 정확한 수치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메이지 3년(1870년)에는 전국의 구 무사와 그 가족·종자가 약 190만 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또한 메이지 4년(1871년) 도쿄부의 인구는 67만 명이었으나, 이 가운데 정인은 약 13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단순 계산으로 따져보면, 지방에서 상경한 무사와 종자가 에도에만 50만 명 이상 거주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에도의 도시 구성

도쿄의 도시 구성을 살펴보면, 야마노테(山の手)는 에도 성 서쪽(현재의 치요다구·미나토구)을 중심으로 한 무사 계급의 거주지였습니다. 반면 정인의 마을은 에도 성 동쪽(니혼바시·긴자 일대)의 매립지에 조성된 매우 좁은 지역으로, 에도의 도시 계획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에도 동쪽의 습지가 계속 매립되어, 현재의 다이토구·고토구·스미다구 일부까지 에도의 도시 영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에도의 도시는 이러한 지역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도쿄 15구'로 불리는 행정 구역이 만들어졌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무사 계급이 사라지고, 남겨진 번 저택들이 재개발되며 새로운 도시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에도가 다시 100만 인구의 도시로 돌아온 것은 메이지 17년(1884년)의 일이었습니다.

'오에도 808정'의 실체

에도 정인들이 살던 지역은 흔히 '오에도 팔백팔십정(大江戸八百八町)', 즉 '에도 808정'이라고 불립니다. 이 이름 때문에 상당한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정인의 마을 하나는 100미터 정사각형 크기의 작은 구역에 불과했으며, 나가야(長屋)와 상점들로 이루어진 한 마을의 인구는 약 300명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막부는 마을의 면적을 넓히기보다는 마을의 개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정인을 관리했습니다.

에도 초기에는 정(町)의 수가 약 300개에 불과했지만, 이후 100년 동안 약 1,700개까지 늘어났습니다. 즉, '오에도 808정'이라 불리는 에도의 마을이 실제로 808개였던 시기는 극히 짧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이 '팔십팔(八十)'이라는 숫자는 일본 신화에 나오는 '팔백만의 신(八百万の神)'처럼, '수가 매우 많다'는 것을 표현하는 관용적인 호칭일 뿐입니다. 당시 에도가 808정이라 불린 것은, 도시와 사람이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