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황에 따른 무기의 효과적 운용
오다 노부나가 군제개편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노부나가가 전황에 따라 무기를 유연하게 투입해 승리를 거둔 전투를 차분히 분석하고, 무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의 세 배에 달하는 장창(長槍)
노부나가는 조총을 비롯한 최신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기존의 무기 개념을 뒤엎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바로 평소보다 훨씬 긴 창, 즉 장창의 도입입니다.
전국시대에 사용된 창의 길이는 2간(약 3.6m)이 주류였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 외에도 장창을 채택한 다이묘가 있었는데, 호조씨는 2간 반(약 4.5m), 다케다씨는 3간(약 5.4m) 길이의 창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장공기(信長公記)』에는 짧은 창으로 서로 부딪치는 모습을 본 노부나가가 3간 반(약 6.3m)에 달하는 장창 제작을 명령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장창의 등장은 그보다 앞선 1553년, 사이토 도산을 맞이했을 당시 그를 따르던 자들이 이미 이 장창을 들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긴 창을 실전에서 다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창의 재료는 떡갈나무와 벚나무 등으로 만들어졌는데, 무게가 상당히 무거웠고 곧게 펴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6.3m에 달하는 긴 목재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아 대량 생산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길이와 무게 때문에 창을 다루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했고, 실전에서도 상대를 찌르기보다는 창부스마(槍衾, 야리부스마)라 불리는 밀집 대형으로 적을 위협하거나, 위에서 내려쳐 쓰러뜨리는 방식으로 싸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이 장창은 모든 창 부대가 장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 훈련된 정예 병사나 측근들에게 한정적으로 지급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실질적인 살상력보다는 적을 위압하는 요소로서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고 여겨집니다.
최신 무기 조총의 도입
노부나가는 젊은 시절 하시모토 가즈마사 밑에서 조총 사용법을 배웠습니다. 이때부터 노부나가는 조총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조총이 큰 활약을 한 전투는 단연 1575년 나가시노 전투일 것입니다. 노부나가는 조총 삼단 사격으로 당대 최강이라 일컬어지던 다케다 기병대를 격파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저격수들의 숙련도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천 명이 일제히 조총을 발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됩니다. 더욱이 적이 항상 나란히 늘어선 대형으로 돌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부나가 진영의 기록에 따르면, 조총 부대는 각 무장의 가신단에서 차출되어 편성되었으며, 천 인 부대마다 지휘관 다섯 명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삼단 사격의 실체는, 이 천 인 부대가 추격 준비를 갖추고 적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사격하며, 적의 동향에 따라 교대로 사격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었다고 믿어집니다.
조총 도입과 함께 노부나가는 탄환의 원료인 납과 화약의 원료인 초석 확보에도 힘썼습니다. 1568년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상경했을 때, 노부나가는 이러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사카이를 직할 통치하에 두었습니다.
오다 수군의 정점, 철갑선(鉄甲船)
덴쇼 6년(1578년), 노부나가는 오사카만 기즈가와 어귀에서 이시야마 혼간지를 지원하던 모리 수군을 격파했습니다. 이때 철갑선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철갑선은 길이 약 23m, 폭 약 13m에 달하는 대형 선박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철갑선은 선체 전체가 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방탄 목적으로 얇은 철판을 부분적으로 장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전체적인 모습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며, 일종의 '배 위의 요새' 같은 이미지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노부나가는 전투를 차분히 분석하고 상황에 맞는 전투 방식을 선택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전술적 안목으로 그는 천하포무(天下布武)를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