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도쿠가와 이에야스, 독특한 경제 감각으로 후손에게 물려준 막대한 유산

오래전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가문의 매장 자금을 찾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들여다보면, 오랜 세월 재정난에 시달리던 도쿠가와 막부에 숨겨진 재산이 있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매장 보물 전설의 근원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남긴 어마어마한 유산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남긴 유산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大坂夏の陣)에서 도요토미 씨를 멸망시키고 도쿠가와의 천하를 확립한 이에야스는, 이듬해인 1616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 남긴 유산은 실로 막대해서, 현금만 해도 100만 냥 이상,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000억 엔이 넘는 금액으로 전해집니다.

이 유산은 고산케(御三家)인 오와리 번과 기이 번에 각각 30만 냥, 미토 번에 10만 냥씩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슨푸(駿府)에 예금 형태로 맡겨 두었다고 합니다. 실제 유산 규모는 100만 냥을 훌쩍 넘어 200만~400만 냥에 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현금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현재 가치로 수조 엔에 이를 희귀품과 명품 미술품, 다구(茶具)가 수없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야스는 평소 희귀한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서, 모아 둔 희귀 명품들을 늘어놓고 감상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돈 버는 기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 대부분은 뛰어난 경제 감각을 갖추고 있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에야스는 6세부터 18세까지 이마가와 씨의 인질로 지내야 했습니다. 인질 생활 내내 경제적인 계산을 놓칠 수 없었을 것이고,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경제 감각 하나만큼은 남다른 선배들을 곁에서 직접 보며 배웠기에, 필연적으로 경제적 안목을 기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에야스는 체면을 가리지 않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돈 버는 기술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다이묘들에게 돈을 빌려주다

시대는 오사카 전투(大坂の陣) 당시였습니다.

오사카성을 공격할 무렵,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이에야스 진영에 섰던 서국(西國) 다이묘들은 군자금이 궁해 곤란해 하는 듯했습니다.

그때 이에야스는 서국 다이묘들에게 "돈을 빌려줄까?"라고 의외의 제안을 던집니다.

서국 다이묘들은 이에야스의 제안에 깜짝 놀랐지만, 응하지 않으면 가문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라 결국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야스는 각 다이묘에게 필요한 만큼 돈을 빌려주면서, 언제든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야스 본인이 주도한 전쟁인데도 돈을 빌려 종군해야 했으니, 각 다이묘의 심정은 허탈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오사카성이 함락된 뒤 성에는 금 2만 냥과 은 2만 냥 이상이 남아 있었는데, 이에야스는 이마저 모두 몰수하고, 각 다이묘에게 빌려준 돈도 철저하게 회수했다고 전해집니다.

종군했던 다이묘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에야스에게 반기를 들 만한 힘을 가진 다이묘는 거의 없었습니다.

에도성 개축 때 이즈의 산을 사들여 돌을 팔다

또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쇼군이 거처하는 에도성에 웅장한 천수각을 짓기 시작하면서, 이에야스는 각 다이묘에게 공사 비용과 인력을 강제로 부담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이즈 방면의 돌 산을 미리 독점적으로 사들여 두었다가, 다이묘들이 석벽을 쌓을 돌을 구하러 오면 그 돌을 팔았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남들이 상식적으로 못 하는 일을 해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에야스는 바로 이러한 감각으로, 훗날 매장 보물 전설이 생길 만큼 막대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