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몽골 침공을 물리친 것은 '가미카제'가 아니었다!? – 문영·홍안의 역 재해석

몽골의 일본 침공과 '가미카제' 전설

몽골의 일본 침공(원구, 元寇)은 쿠빌라이 칸이 황제로 군림하던 원나라가 1274년 문영의 역(文永の役)과 1281년 홍안의 역(弘安の役)에 걸쳐 두 차례 감행한 침략 전략입니다.

당대 세계 최강이라 평가받던 원나라 군대를 물리친 것은 가미카제(神風), 즉 신풍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통설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미카제 외에 다른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는 학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영의 역(1274년) – 폭풍이 아니라 '화살 고갈'

먼저 1274년에 벌어진 문영의 역이 첫 번째 침공입니다.

침공 시기는 신력 11월 하순으로, 일본 열도에서 태풍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계절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함선이 사라질 만큼 바다가 거칠어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일본 측 사료를 보면, 어떤 기록은 “역풍이 불어 원나라 군대가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적었을 뿐 바람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또 『하치만 대보살 우동훈』은 “대함대가 새벽녘에 사라졌다”고 기록했지만, 여기서도 가미카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고려사』에는 처음으로 “야간 폭풍으로 많은 함대가 전복되었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원나라 측 사서에는 “군대가 통제를 잃었고 화살이 다 떨어져 철수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원나라 군대가 강했던 비결은 기마병의 기동력과 한 번의 전투에서 수백만 발씩 소모하는 압도적인 화살량이었습니다. 이 전술의 핵심인 화살이 고갈되는 것은 검을 잃은 무사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 가마쿠라의 고케닌(御家人)들은 원나라 군대에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퇴각하며 싸우던 고케닌이 추격해오던 원나라 군의 부사령관을 활로 꿰뚫어 큰 부상을 입혔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원나라 군대는 고려 병사들을 반강제로 동원한 상태였고, 화살이 떨어진 상황은 본국으로 돌아가기 좋은 핑계가 되었습니다. 또한 부사령관이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폭풍을 만나지 못했다”는 명분을 만들어 철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한편 철수가 밤에 강제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해상의 폭풍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설들을 종합해 보면, 원나라 군대가 가미카제 때문에 철퇴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홍안의 역(1281년) – 승리의 열쇠는 '상륙 저지'

두 번째 침공인 홍안의 역은 1281년에 일어났습니다.

이번 침공에는 실제로 태풍에 가까운 폭풍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원나라 군대가 그것 때문에 철수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승리의 원인은 가마쿠라 막부가 충분한 방어 체계를 갖추어 상륙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문영의 역 이후 막부는 하카타만 연안에 석벽(원구방루, 元寇防塁)을 쌓는 등 만전의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음력 5월 21일경, 쓰시마를 공격한 고려군 중심의 약 4만 명(동로군)과 옛 남송 출신 병사 중심의 약 10만 명(강남군)이 상륙을 노리고 각지에서 격전을 벌였습니다. 나가토 등 여러 지역을 공격했지만 막부군에게 상륙을 막히자 함대를 하카타만에 집결시켜 총공격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총공격을 앞둔 음력 7월 30일, 가미카제(태풍)가 몰아치면서 원나라 군대는 큰 타격을 입습니다. 하지만 5월부터 두 달 가까이 상륙하지 못하고 바다 위에서 버텼다면, 태풍 한두 개쯤은 언제든 몰아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큰 피해를 입었더라도 원나라 군대가 가미카제만으로 철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막부의 고케닌들이 상륙을 끝내 허용하지 않은 것이 가미카제의 위력을 극대화한 것은 아닐까요?

이 해석에 따르면, 이 승리는 가미카제 덕분이 아니라 고케닌들의 분전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미카제로 표류한 원나라 군의 선박에 작은 배를 타고 기습하여 큰 전과를 올린 고케닌들도 있었습니다.

승리의 그늘 – 고케닌들의 불만

세계 최강의 원나라 군대는 고케닌들이 이끄는 막부군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원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일본을 지킨 것은 다행이었지만, 전쟁이 국내 방어전이었기 때문에 고케닌들에게 충분한 포상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고케닌들의 불만은 점차 커져갔고, 이는 훗날 가마쿠라 막부가 흔들리는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몽골 침공의 자세한 경과는 관련 글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