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케(平家)를 멸망시키고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 그리고 그의 동생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経)는 수많은 일화에 둘러싸인 인물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시츠네의 용모에 대한 기술이 사료에 따라 크게 달라, ‘미소년’과 ‘못생긴 남자’ 사이에서 평가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두 명의 요시츠네
『겐페이 조스이키(源平盛衰記)』에서 요시츠네는 “피부가 희고 용모가 단정하며 거동이 우아하다”라고 칭송받으며, 『기케이키(義経記)』에서도 “눈썹이 아름답고 천하에 필적할 자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요시츠네를 습격한 도적들이 그를 양귀비(楊貴妃)에 비유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많은 여성들이 요시츠네를 동경하는 인물이었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반면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에서는 “뛰어난 자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헤이케의 하급 관리들보다도 못하다”라고 적히며, 키가 작고 이가 돌출했다고 엄격하게 묘사됩니다. 『코와카마이(幸若舞)』에서는 심지어 “삐뚤어진 이에 붉은 수염, 원숭이 같은 눈”이라며 더욱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 차이를 두고 하나의 흥미로운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바로 이 시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동생 요시츠네 외에 또 다른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야마모토 요시츠네(山本義経)입니다. 미나모토노 요시미츠(源義光)의 후손, 즉 오미 겐지(近江源氏) 계열로, 오미국 나가하마의 야마모토 성주였으며 뛰어난 무장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겐지의 정통 혈통을 이었기에 본명 역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로, 유명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성과 이름까지 완전히 같았습니다.
야마모토 요시츠네는 우지강 전투(宇治川の戦い)에서 키소 요시나카(木曽義仲)의 군세에 가담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칼을 교차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키소 요시나카는 법황(後白河法皇)을 유폐하는 일련의 행동으로 인심을 잃었고, 가신들이 이탈하면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키소 요시나카의 군에 가담했던 야마모토 요시츠네는 이 전투 이후 공식 기록에서 모습을 감추어, 그 후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됩니다.
한편 우지강 전투 이전까지 실전 경험이 거의 없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는, 누구나 아는 대로 야시마·단노우라 전투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칩니다. 과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여기서 하나의 가설이 등장합니다. 우지강 전투 이후 야마모토 요시츠네가 어떤 경위로든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군세에 합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와호에서 수전(水戦) 경험을 쌓은 야마모토가 요시츠네를 대신해 수상 전투를 담당했다면, 실전 경험이 부족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슈에서 탈출한 것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아니라 야마모토 요시츠네였을까?
형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의 균열이 깊어지자,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는 오슈로 가 후지와라노 히데히라(藤原秀衡)의 보호 아래 살게 됩니다. 그러나 히데히라 사후 그의 아들 후지와라노 야스히라(藤原泰衡)가 요시츠네를 습격하였고,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는 하이즈미의 고로모가와 관(衣川館)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런데 이때 요시츠네는 죽지 않고 탈출하여 대륙으로 건너가 징기스칸이 되었다거나, 에조치(蝦夷地, 오늘날의 홋카이도)로 넘어갔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실제로 홋카이도 곳곳 약 110곳에 요시츠네와 관련된 전승이 남아 있으며, 도호쿠 지방에도 요시츠네의 전설이 폭넓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막부의 추포령이 전국에 미친 상황에서 도피는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오슈 하이즈미에서 자결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왜 도호쿠 각지에 요시츠네의 전승이 남아 있는 걸까요?
여기서 야마모토 요시츠네가 등장합니다.
만약 오슈 후지와라 씨에게서 탈출한 인물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아니라 야마모토 요시츠네였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설명됩니다. 이후 도호쿠 각지에 남겨진 흔적도 설명이 되고, 본인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아니므로 막부의 수색망을 자연스럽게 피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동국(東國)에는 야마모토가 의지할 만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미나모토노 요시노리(源義憲)를 시조로 하는 사타케 씨(佐竹氏)입니다. 당주 사타케 히데요시(佐竹秀義)는 요리토모와 대립해 오슈로 피신했던 인물이지만, 이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용서를 받고 오슈 정벌에서 무공을 세워 다시 고케닌(御家人)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후지와라 씨에게서 벗어나 오슈에 숨어 지내던 야마모토 요시츠네 입장에서는, 후지와라 씨 토벌을 통해 오슈에 발판을 마련한 사타케 히데요시에게 의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야마모토의 뛰어난 무예를 고려한다면, 히데요시가 그를 환영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어쩌면 그는 도호쿠를 떠돈 끝에, 에조에서 전승에 따르는 아이누의 신으로 숭배받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주변에는 수많은 민담과 전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이번에 소개한 내용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입니다. 재미있는 민간 전설의 하나로 즐겁게 감상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