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다케다 가문 멸망의 원인은 사업 승계 실패! 전국무장의 후계 문제에서 배우는 교훈

1467년 오닌의 난으로 시작된 전국시대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고 에도 막부를 열면서 200년이 넘는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대는 은행조차 파산하는 시대이며, 코로나19 관련 연쇄 사태로 세계 경제가 냉기를 띠면서 2020년 중소기업의 생존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후계자 선정이 필수적입니다.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 같은 센고쿠 다이묘들이 사후 가문의 존속을 위해 고심했던 역사에서 그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조차 사후 도요토미 가문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 모두 후계자 선택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부자 간 대립으로 시작된 다케다 신겐의 가독 계승

고슈 기병으로 유명하고 '풍림화산' 깃발로 친숙한 다케다 가문의 역사는, 사실 신겐이 가독을 계승하며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노부토라가 어린 신겐을 차갑게 대하며 동생 노부시게에게 가독을 물려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눈치챈 신겐은 아버지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무해한 인간인 척하면서, 가신들의 불만을 끌어모으고 서서히 외호를 좁혀 나갔습니다. 마침내 관련 세력의 협력 속에 노부토라를 추방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다케다 가문은 중신 합의체에 의한 집단 지도 체제로 국정을 운영했으며, 중신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기업 조직과 매우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토지가 척박하고 석고(石高)와 상업이 취약한 고후 분지에서 군용 도로와 하천의 수리 치수를 개선하고 해외 진출을 통해 판로를 확장하여,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센고쿠 다이묘로 성장했습니다.

신겐의 장남으로 태어난 다케다 요시노부(義信)는 매우 용맹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다케다 가문은 갑상준 삼국동맹(甲相駿三国同盟)을 통해 다케다·호조·이마가와 세 가문의 번영이 기대되는 상태였습니다. 이후 신겐은 시나노국 스와 땅을 장악하고 스와 가문 출신 측실을 맞이했는데, 그 사이에서 가쓰요리(勝頼)가 태어났습니다.

애초에 다케다 가문 내에는 스와 가문과의 혼인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쓰요리는 결국 스와 가문을 계승하며 '스와 시로 가쓰요리'라 자칭하게 되는데, 이것이 훗날 가문 내 복잡한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다케다 가문의 운명을 바꾼 전환점

다케다 가문 번영의 기어가 바뀐 것은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패배하면서부터입니다. 이마가와 가문의 쇠퇴를 감지한 신겐은 동맹을 깨고 스루가 침공 정책으로 노선을 전환합니다.

그렇게 되자 어머니가 이마가와 가문 출신인 요시노부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이마가와 가문에 가까웠던 중신들 사이에도 불안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결국 요시노부는 모반 혐의를 뒤집어씁써 할복을 강요당했습니다.

이 소위 '요시노부 사건'에서 다케다 사천왕의 한 명인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형이자, 신토라 시대부터의 원로였던 이토미 도라마사가 연좌되어 요시노부와 함께 할복했습니다. 도라마사는 모반 계획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는 설, 선대부터의 중신이었기에 신겐에게 숙청당했다는 설, 요시노부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라는 설 등 여러 해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넷째 아들이었던 가쓰요리가 신겐의 후계자로 지명됩니다. 가쓰요리는 즉시 오다 노부나가의 양녀를 정실로 맞아 가신들의 불안을 달래려 했지만, 반대 세력은 여전히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573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신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대파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그 직후 추격 작전 중 병을 앓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조직 재건에 실패한 다케다 가문

요시노부가 할복한 지 6년 뒤, 가쓰요리는 다케다 성씨로 돌아와 가독을 계승했습니다.

가쓰요리는 아버지에게 뒤지지 않는 무용을 지녔으며, 아버지조차 이루지 못한 다카텐진 성 함락을 달성해 일시적으로 다케다 가문 최대의 영토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에게 참패하면서 신겐 시절부터 이어져 온 명장들을 대거 잃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가쓰요리에게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던 다케다 가문을 재건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신겐이 아꼈던 사나다 마사유키 등 젊은 인재들이 두각을 드러내던 시기였고, 가쓰요리가 이때 조직의 젊충(年輕化)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면 역사의 흐름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외교 면에서 도쿠가와 군이 다카텐진 성을 공격했을 때 원군을 파견하지 못하는 실책을 범합니다. 이 일로 다케다 가문의 신뢰는 크게 훼손되었고, 변경 백성들의 마음은 떠나갔습니다. 이어 1582년에는 신겐의 사위인 기소 요시마사가 오다 측으로 배반하면서 다케다 가문의 멸망은 결정적인 국면을 맞이합니다.

이 무렵 대규모 거성인 신푸 성이 축조되었으나 결국 버려졌고, 오야마다 노부시게의 초청으로 이와바다 성(岩殿城)으로 피신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가쓰요리는 마침내 덴목산(天目山)에서 자결하며 다케다 가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다케다 가문의 사업 승계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

오늘날에도 사업 승계에 필요한 핵심은 철저한 준비, 인재 육성, 경영 철학의 공유입니다.

사업 승계 4원칙

  1. 사업 승계에는 충분한 준비와 함께 설득력과 유연함이 필요하다
  2. 언제든 사업을 승계할 수 있도록 젊은 인재를 육성하고 인재를 채용해 조직의 젊충을 꾀한다
  3. 명분과 철학이 없으면 조직의 단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4. 사업 승계 후 창업자는 간섭을 자제하고, 적절한 온도로 지켜본다

다케다 가문만이 아니라 현대의 모든 기업이 위 사항을 명심해야 합니다. 업종을 불문하고, 창업자의 카리스마가 클수록 후계자에게 가해지는 압박감 또한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창업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은퇴 준비와 차세대 리더 육성, 그리고 경영 철학의 공유입니다. 동시에 직원들과 승계자의 역량을 끝까지 믿어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의 80%는 사전 준비에서 결정된다는 말처럼, 사업 승계를 위한 준비와 세팅을 모두 마쳤다면 그 후에는 한 단계 높은 시야에서 지켜보는 것이 성공의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