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는 국가 간에 다양한 협정과 동맹이 체결되어 있습니다.
유엔(UN)과 같은 국제기구를 비롯해 선진 7개국이 모여 논의하는 G7(Group of Seven), G20 같은 국제 회의, 그리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 안보와 무역을 위한 프레임워크도 존재합니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프레임워크를 만들면서 경제를 활성화해 국가를 풍요롭게 하고, 자국의 안보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나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이러한 틀이 세계 권력의 균형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처럼 종교와 민족, 정치 체제가 서로 다른 국가들이 모여 지역 내에서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다자간 협의나 동맹 강화는 인접 국가들에게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알기 쉬운 예로, 냉전 종식 후 NATO가 동유럽 국가들을 잇달아 회원국으로 추가하며 동쪽으로 계속 확장해 온 결과 러시아가 경계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우크라이나 침공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국제 정세의 큰 흐름 속에서 세계가 어떤 협정과 동맹을 맺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국제 질서 구축의 실패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이어진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여러 나라에 엄청난 폐허를 남겼습니다.
이런 참극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탄생한 것이 국제연맹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불참을 결정했고, 상임이사국이었던 일본·독일·이탈리아가 탈퇴하면서 국제연맹은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은 패전국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했고, 독일에서는 초인플레이션이 계속되었습니다.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여겨진 바로 그때 세계 대공황이 발발합니다.
대공황으로 독일 경제는 다시 악화되었고, 이는 베르사유 체제를 타파하려는 나치의 대두를 허용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공황은 각국을 심각한 무역 침체에 빠뜨렸습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은 식민지 등 자국의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을 블록으로 묶어 블록 내부에서는 관세를 낮추고 무역을 촉진하는 한편, 블록 외부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블록 경제 속에서 소외되어 어려움을 겪은 것이 일본·독일·이탈리아였습니다.
이 세 나라에게 군사적 침략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사회는 국제 질서 구축에 실패했고, 제대로 된 질서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 실패가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등장한 유엔 구상
유엔의 구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그려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영토 불확장과 민족 자결 등 전후 구상에 관한 방침을 담은 대서양 헌장이 발표되었고, 다른 연합국들도 이에 동의하면서 연합국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것이 전후 유엔 설립으로 이어집니다.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히 설립되었지만, 곧바로 기능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냉전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냉전기에 구축된 다양한 프레임워크
냉전기에 만들어진 동맹으로는 1949년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 간의 군사 동맹인 NATO가 결성되었습니다.
NATO는 회원국 중 하나가 무력 공격을 받으면 이를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한다는 집단안보동맹입니다.
또한 서방 진영은 미국과 오세아니아 간의 ANZUS(태평양안전보장조약), 미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간의 SEATO(동남아시아조약기구)를 통해 동측 국가들을 포위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한편 동측 국가들도 1955년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결성한 바르샤바 조약기구(WTO)를 만들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코메콘(COMECON)을 결성했고, 서방 국가들도 EEC를 거쳐 1967년 EC를 설립했습니다.
1955년에는 전후 독립한 신흥국들이 반둥 회의를 개최하며 제3의 길을 향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많은 국가들은 여전히 냉전의 틀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냉전 구조는 동서 진영이 적대하며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동시에 일종의 안정감도 존재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혼란은 냉전기에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 종식 후에도 세계는 하나로 뭉치지 못하다
1989년 냉전이 끝났을 때 이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될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동서 독일은 통일되었고, 1993년에는 유럽 전체의 통합을 목표로 하는 EU(유럽연합)가 출범했습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즉각 이라크에 대한 비판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은 상임이사국 단 하나만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채택되지 않는데, 주요국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국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온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01년 미국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2003년에는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엔은 다시 기능 부전 상태에 빠졌습니다.
한편 G7(선진 7개국 회의)은 러시아를 더해 G8이 되었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자격이 정지되면서 다시 G7 체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프레임워크 역시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영향력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평론가들은 세계를 주도할 국가가 없다는 의미에서 이를 G0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세계의 행방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국제 질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은 기존의 세계적 프레임워크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핵심 요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라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채택된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며 보호무역주의 노선에 착수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존 서방 국가들의 정책과 정반대였습니다.
그 결과 2018년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고립감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더 나아가 NATO 회의에서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회원국들도 적절한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결과 미국과 유럽 간의 균열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 역시 결속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는 EU 탈퇴가 결정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EU에 비판적인 정당이 집권하면서 유럽의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트럼프의 TPP 탈퇴 선언으로 세계 경제의 약 30%를 차지하는 거대한 자유경제권을 만들려던 구상이 좌절되었습니다. 이는 트럼프가 TPP 같은 다자간 협의보다 강대국으로서의 힘을 배경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쉬운 양자 협상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는 미국을 배제한 새로운 협정이 구축되고 있으며, 호주,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11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관한 포괄적이고 진보적인 협정(CPTPP)에 서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