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가신이자 첩, 여무장 바고젠의 생애와 무용담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에 관한 글에서 바고젠(巴御前)에 대해 잠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바고젠은 요시나카의 가신이자 첩으로, 그가 전장에 나서면 기소 요시나카 군의 장수로서 활약했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헤이케 이야기』와 『겐페이 성쇠기』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고젠은 겐페이 전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인기와 인지도는 기소 요시나카 본인보다 더 높다고 평가될 정도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바고젠의 생애와 무용담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기소 요시나카와 함께 다이라 씨 토벌을 꿈꾸던 바고젠

평안 말기 겐페이 전쟁에서 누구보다 이름을 떨친 겐지(源氏)의 혈통을 이은 시나노국의 무장이 바로 기소 요시나카입니다.

그의 총애를 받으며 전장에서 "기소 요시나카 군의 장수로서 활약했다"고 그 용맹함이 전해지는 여무장이 바로 바고젠입니다.

바고젠의 정확한 출생 연도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1153년부터 1163년 사이로 약 1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신슈 기소의 호족인 나카하라 가네토(中原兼遠)의 딸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그녀의 형제로는 요시나카의 중신이자 소꿉친구였던 이마이 가네히라(今井兼平) 등이 있으며, 가족 모두 끝까지 요시나카를 따랐다고 합니다. 바고젠의 집안 전체가 기소 요시나카를 섬겼던 셈입니다.

바고젠은 흰 피부에 긴 머리를 지닌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전장에 나서면 뛰어난 활솜씨를 뽐냈고, 일본도 하나만 들면 귀신이나 신이라도 상대하겠다는 기개의 여무장으로 변신했습니다. 다이라 씨 10만 대군을 격파하고 겐페이의 세력 구도를 뒤집은 것으로 유명한 구리카라 고개 전투(倶利伽羅峠の戦い)에서는 부대의 장수로서 크게 활약했습니다.

기소 요시나카와 바고젠의 만남

바고젠은 요시나카보다 세 살 아래로, 히구치 가네미쓰(樋口兼光)와 이마이 가네히라 형제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기소에서 요시나카와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요시나카의 가신이 되는 것을 꿈꾸었고, 말을 타고 활과 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활동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두 형제와 함께 지내며 자연스럽게 요시나카와 가까워졌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요시나카와 바고젠은 결국 부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나카하라 가네토는 바고젠 대신 온화한 성품의 그녀의 언니를 요시나카에게 시집보냈다고 합니다.


기소 요시나카와 갈등 없는 시나노를 향한 길

요시나카 자신은 자신을 키운 시나노국을 전란 없는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고, 다른 호족들과 혼인 관계를 맺어 세력을 확장하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요시나카를 깊이 사랑했던 바고젠은 복잡한 감정을 안고서도 첩의 자리에 머물며, 요시나카와 시나노의 평화를 위해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요시나카와 바고젠이 살았던 시대는 나라의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던 격변기였습니다. 시나노의 한 지방에서 태어난 여인 바고젠은 시대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요시나카의 포부를 깊이 이해했고, 그것을 함께 이루고자 노력했습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파견한 가마쿠라 대군에 의해 요시나카가 최후를 맞이한 아와즈 전투에서도, 마침내 주종 다섯 명만 남게 되었을 때 그녀는 아름다운 갑옷을 입고 강하고 사나운 말을 타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모습은 요시나카의 눈에 깊이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요시나카의 마지막 전투에서 빛난 바고젠의 무용담

평안 말기 겐페이 전쟁에서 겐지 측 장수로 활약하며 요시나카의 첩이자 훌륭한 가신이었던 바고젠. 그녀의 용맹함을 가장 생생하게 전해주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아와즈 전투에서 기소 요시나카 곁을 지킨 바고젠

요시나카는 헤이케(平家) 토벌의 가장 중요한 주역이라 할 수 있지만,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 패배하여 31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기소 요시나카의 마지막 전투인 아와즈 전투(粟津の戦い)에서도 바고젠은 요시나카 곁에 있었으며, 그녀의 용맹함은 『헤이케 이야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에 따르면, 기소 요시나카 군은 약 1,600명에 불과하여 가마쿠라 군 6만을 상대로 열세에 몰렸습니다. 결국 비와호가 펼쳐진 오미국 아와즈에서 단 다섯 기마만 남은 채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당시 요시나카는 31세, 바고젠은 28세였습니다.

바고젠 역시 아와즈 전투에서 가신으로서 요시나카 곁에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헤이케 이야기』는 바고젠과 함께한 기소 요시나카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고젠은 요시나카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계속 도망치라고 재촉하는 요시나카의 모습에 "좋은 적이라도 있는가? 마지막 활약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 무사시국에서 유명한 미타 하치로(御田八郎)가 30기마를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바고젠은 적진 속으로 과감히 돌진하여 미타 하치로에게 접근하자 그를 붙잡아 말에서 끌어내렸고, 자신의 말 안장에 눌러붙인 뒤 목을 비틀어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바고젠은 갑옷을 벗고 동국 방향으로 떠났습니다.

요시나카의 아내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는 기소 요시나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받쳐 준 인물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도망치라고 애원하는 요시나카를 보며 그녀는 자신을 향한 사랑의 깊이를 깨달았고, 전장에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불태우며 마음을 접었을지도 모릅니다.


비구니가 되어 91세의 생을 마감한 바고젠

가마쿠라 군과의 전투에서 죽음을 각오한 기소 요시나카의 뜻을 받들어 눈물로 전장을 떠난 바고젠, 그녀의 이후 행적은 어떠했을까요?

전국에는 바고젠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곳이 약 15곳에 이릅니다. 그중 도야마현 난토시 후쿠미쓰텐진(福光天神)에 있는 '도에마쓰(巴松)'라는 소나무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바고젠이 비구니로서 말년을 보낸 암자 터라고 전해지는 곳이 있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에는 바고젠이 요시나카의 뜻을 받들어 동쪽으로 떠났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가마쿠라 시대 중후반에 쓰인 군키모노가타리 『겐페이 성쇠기』에서는 그녀가 시나노로 물러났다가 붙잡혀 가마쿠라로 끌려갔다고 전합니다. 그곳에서 패장으로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유력 고케닌인 와다 요시모리(和田義盛)가 "이렇게 씩씩한 사람과는 자식을 얻고 싶다"며 목숨을 구해달라고 탄원했고, 그녀는 와다 요시모리의 아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와다 요시모리 사이에서 뛰어난 용맹함을 자랑하는 아사히나 요시히데(朝比奈義秀)가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겐페이 성쇠기』는 군키모노가타리일 뿐만 아니라 허구의 비중이 매우 커서, 이 이야기 역시 전설로 여겨집니다.

또한 『아즈마 카가미』에는 에치고 출신의 명궁 항가쿠 고젠(坂額御前)이라는 여무장의 전기가 실려 있는데, 이야기의 후반부가 바고젠의 이야기와 거의 같아 두 사람이 혼동된 것이 아니냐는 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구리카라 고개 일대의 바즈카(巴塚) 안내판에는 『겐페이 성쇠기』의 내용 개요와 함께 "간세이(寛政) 연간 10월 22일 해 질 녘, 이시구로라는 인물이 이곳에 도에지(巴寺)를 세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