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뜻밖에도 많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역사 속 여성 무장들

2017년 NHK 대하드라마 『여성 성주 나오토라(おんな城主 直虎)』는 이이 나오토라를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방송 시작 직전에는 “나오토라는 사실 남자였다는 설”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여성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시청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성주로서 당당히 지휘봉을 휘두른 인물이 여성이라니, 조금 의외라고 느껴지시지 않나요?

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이 나오토라 외에도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유명 여성 무장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여성 무장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나모토노 요시나카를 섬긴 여전사, 토모에 고젠

“무장” 하면 전국시대를 떠올리기 쉽지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겐페이 전쟁 무렵에도 활약한 여전사가 있습니다. 우아한 공가(귀족)의 시대가 저물고 무사의 시대로 바뀌던 그 전환기에 등장한 여걸이 바로 토모에 고젠(巴御前)입니다.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와 『겐페이 성쇠기(源平盛衰記)』에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토모에 고젠은 가마쿠라 막부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대립했던 키소 요시나카(木曽義仲,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첩으로서(정실이라는 설도 있음), 한 명의 무장으로서 깊이 중용되었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에서는 “토모에는 피부가 희고 머리카락이 길며 용모가 매우 단정하다”라며 그 미모를 칭찬하는 한편, “강한 활솜씨를 지닌 병사로, 일기당천의 용맹을 지녔다”라며 검과 활로 싸우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겐페이 성쇠기』에서는 같은 무장임에도 “대장”이라 칭하며, 구리카라 고개 전투와 요코타가와라 전투에서 수많은 적장을 베는 대활약을 펼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만화에 등장한 이 캐릭터의 이미지가 아주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헤이케 이야기』를 비롯한 겐페이 전쟁 관련 이야기는 노(能), 우키요에, 연극, 소설, 드라마 등 오랫동안 대중적인 소재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너무 아름다워 적장에게 구혼까지 받았던 성주, 오츠야 부인

오츠야 부인(おつやの方)은 오다 노부사다(織田信定)의 딸로,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숙모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미노국 이와무라 성주 도야마 카게토의 아내였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주변 인물인 오이치, 오츠야 모두 미녀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1572년 남편 도야마 카게토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노부나가의 다섯째 아들을 양자로 들여 성주로 삼으려 했으나 아직 어렸기 때문에, 부인인 오츠야가 대신 성주로서 성을 지키게 됩니다.

이 이와무라 성은 일본 3대 산성으로 꼽히며, 혼마루는 해발 717미터 지점에 위치한 견고한 요새였습니다.

오츠야 부인이 성주가 된 다음 해, 다케다 가문의 무장 아키야마 노부토모가 이와무라 성을 공격했지만, 성이 너무 견고하여 화친을 제안합니다. 그 자리에서 만난 오츠야 부인의 미모에 홀딱 반한 아키야마 노부토모는 화친과 함께 혼인을 청했고, 오츠야 부인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와무라 성은 적진인 다케다 가문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다케다 가문에 빼앗긴 이와무라 성을 되찾기 위해 노부나가는 병력을 파견하는 한편, 숙모인 오츠야와의 친척 관계를 내세워 회유를 시도합니다.

결국 노부나가는 아키야마 노부토모와 그 부하들을 처형했고, 숙모인 오츠야 역시 십자형에 처하라 명합니다. 오츠야 부인은 노부나가에 대한 원망을 크게 외치며 처형당했다고 전해집니다.

히데요시의 측실이 된 “관동무쌍의 미녀”, 카이히메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오시 성(忍城)의 성주 나리타 우지나가의 딸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된 카이히메(甲斐姫)는 “관동무쌍의 미녀(関東無双の美人)”라 칭송받을 만큼 미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군사에 밝고 무예도 탁월했다고 합니다. 1590년 히데요시가 오다와라 정벌을 일으켰을 때, 카이히메는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끄는 2만 3천 대군에 맞서 3천 명의 병력으로 오시 성을 끝까지 사수하다가, 오다와라 성이 항복할 때까지 버텼다고 전해집니다.

호조 가문의 항복 후, 카이히메는 아버지를 따라 아이즈의 후쿠이 성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나리타 우지나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가신들의 반란이 일어나 성이 점거되고, 카이히메의 계모마저 살해당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카이히메는 반란군을 물리치고 난을 일으킨 가신들을 직접 토벌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히데요시는 크게 감동하여 카이히메를 측실로 맞아들였습니다.

카이히메는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에 있었다고 하며, 한 설에 따르면 요도도노의 명을 받아 히데요리의 교육 담당을 맡았다고도 합니다.

“이이 나오토라는 사실 남자였다”는 말처럼, 위에 소개한 여성들 역시 몇 가지 불확실한 부분이 있지만, 만약 실재했다면 남자들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펼쳤을 것입니다.

나오토라의 남성설은 부정되었지만, 그 반대로 “사실 여성이었다는 설”이 유명한 무장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다케다 신겐과 가와나카지마에서 수차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바로 그 사람...

우에스기 겐신입니다.

우에스기 겐신 여성설!?

포털 사이트에서 “우에스기 겐신”을 검색하면 “우에스기 겐신 여성”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뜨는데, 겐신의 여성설이 상당히 주목받고 있는 듯합니다.

우에스기 겐신은 원래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인 나가오 가문 출신으로,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라고 불렸습니다.

나가오 가문을 계승한 후, 본가인 간토 간레이 우에스기 노리마사의 양자가 되어 우에스기 가문을 잇게 됩니다. 이후 에치고의 내분을 수습하고 통일한 뒤, 다케다 신겐과 수없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왜 겐신에게 여성설이 생겨났을까?

우에스기 겐신의 여성설은 한 작가의 주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작가에 따르면, 스페인에서 발견된 곤살레스(Gonzales)라는 인물이 펠리페 2세에게 보낸 보고서에 겐신이 여성이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보고서에는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숙모가 개발한 사도의 금광을 보유하고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겐신 누나의 아들이므로, 카게카츠 입장에서 ‘숙모’란 겐신 외에는 없습니다.

또한 마츠다이라 다다아키의 저술 『당세(當世)』에 따르면 겐신의 사인은 “충충(虫気)”인데, 이것이 붉은 색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월경을 뜻하는 은어라는 것입니다. 즉 겐신의 병은 부인과 질환, 월경 관련 질병이라는 해석입니다.

니가타 지역에 전해지는 고제(瞽女) 노래 민요에도 겐신을 읊는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 두 가지 근거 모두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여성이라고 추측되는 또 다른 이유는 겐신이 평생 독신이었다는 점입니다. 정실은커녕 측실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었고, 심지어 소동(小姓, 시종)조차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달 열흘 무렵이면 배앓이를 하여 전쟁 중에도 진영을 이탈하고 방에 틀어밉혔다고 합니다. 매월 정해진 날짜에 찾아오는 복통이라면 월경 이외에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진중을 이탈할 정도였으니 생리통이 상당히 심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겐신은 『겐지 이야기』나 『이세 이야기』 같은 사랑 이야기를 즐겨 읽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고 여성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어느 쪽이든 여성적인 취향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흔히 말하는 “남장의 여인”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약 겐신이 실제 여성이었다면, 에도시대 막부가 정한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에 여성 성주를 인정하지 않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우에스기 가문이 여성이었다는 증거를 처분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우에스기 겐신에 대해 인물전으로 다루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