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1월 26일, 인도가 처음으로 '독립 기념일'을 열렬히 기념하기로 결정한 날, 비하르주 베구사라이(Begusarai) 지구에서는 축제가 아닌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이날 발생한 베구사라이 총격 사건은 영국 식민 통치에 맞선 인도 독립운동의 희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건의 배경
1929년 인도 국민회의 라호르 회의에서 '푸르나 스와라지(Purna Swaraj, 완전한 독립)'가 선언된 이후, 1월 26일은 전 인도가 독립 의지를 확인하는 '독립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매년 이날이면 각지에서 집회와 행진이 열렸으며, 베구사라이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건의 경위
1931년 1월 26일, 라구나트 브라마차리(Raghunath Brahmachari) 선생의 지휘 아래 베구사라이 지구의 프라하스(현 수드나가르)에서 대규모 독립 기념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 행진은 평화적으로 거리를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행진 대열이 옛 우체국 근처에 다다랐을 때, 당시 부경감(DSP)이었던 바시르 아메드(Bashir Ahmed)가 무단으로 발포를 명령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총격으로 여섯 명의 시위대가 그 자리에서 순국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순국한 순교자들
이날 희생된 순교자 중 신원이 확인된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차ンド라셰카르 싱(Chandrashekhar Singh) – 바이와르 출신
- 람찬드라 싱(Ramchandra Singh) – 반드와르 출신
- 차투 싱(Chhathu Singh) – 라탄푸르 출신
- 바나라시 싱(Banarasi Singh) – 파하사르 출신
이 외에 두 명의 순교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름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 총격 사건은 당시 테디 나트(Teddy Nath) 사원 앞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적 의의
베구사라이 총격 사건은 평화적인 독립 요구가 무력으로 탄압당했던 식민지 인도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름 없이 희생된 순교자들을 포함한 이들의 헌신은 오늘날까지 인도 독립운동사에서 소중하게 기억되고 있으며, 매년 1월 26일 '공화국의 날'로 기념되는 날짜가 지닌 역사적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